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77 영동 민주지산<1,241m>에서 특전용사들의 명복을 빌다.

김흥만 2017. 3. 24. 20:27


2009.  9.  15.

민주지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언제부터인가 11년 전 훈련의 일환인 천리행군 당시 6명의 특전부대 용사들이

저체온증으로 순직하며 참사를 빚었던 민주지산에 올라 명복을 빌고 싶었다.

 

그렇게도 민주지산이 험하고 위험했을까?

작전이 무모했어도 군인의 생명은 명령이다.

물론 적법한 훈련계획에 의거 정당한 명령을 내렸겠지.


그래도 산행 내내 이건 아니다 싶다.

관련된 동영상을 전에 본 기억이 있어 잠시 더듬어 본다.

400km 행군은 특수전부대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배양하기 위한 일종의 훈련이다.

 

6부 능선에서 진눈깨비에 몸이 젖은 대원들이 주능선에 갑자기 쏟아지는 폭설 30cm에

탈진과 저체온증으로 대위급 장교 1명과 부대원 5명이 차례로 순직한 참사인데,

내 나름대로 의문점이 많다.

 

물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군인정신과 임전무퇴 등 나무랄데가 없지만,

돌발된 특수상황에서 위험을 감지하였을 때 왜 바로 하산을 하지 않았을까.

 

1998년 4월 2일이면 봄기운이 한창이지만,

대원들이 쉬지도, 자지도 않으며 진행해온 특수훈련으로 어느 정도 지친상태인데도

젖은 몸을 이끌고 민주지산을 넘어라?

 

물론 적과의 접적 전투지역에서는 불을 함부로 피울 수 없다.

그래도 위급한 상황이니 지휘관의 재량에 의해 텐트와 불을 이용해 몸을 녹일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최전방 보병부대 출신이라서 아쉬움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이등병시절에 천리행군을 나선 적이 있었다,

양구에서 대암산(1,314m)을 거쳐 산줄기로만 춘천까지 200km 행군인데,

그날 기온이 영하 23도였다.

 

'대암산 용늪'을 지나며 영하 28도까지 온도는 내려가고,

선임병이 소변을 보면 오줌줄기가 얼어 올라온다고 해서 눈 위에 갈겨보기도 하고,

광치령 근처에서 선발대로 나섰던 나는 탈진해 환상을 보게된다.

너무도 배가 고프고 지쳐, 살이 찢어지는 매서운 눈바람 속에 나무마다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것으로 착각하며 환각에 빠져든다.

 

오로지 먹고 자고 싶은 생각 이외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선임병인 심상태 병장에게 사과 따먹고 가자고 조르다 몇 대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지만,

본대는 따라 오지 않는다.


너무 기온이 떨어져 훈련이 중지되어 이미 본대는 부대로 복귀 중이고 우리도 철수하라고

선임하사가 명령한다.

물론 부대로 복귀하여 군기가 빠졌다고 선임병들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고, 그 후 동상초기에

걸린 몸으로 잠시 고생도 하였으나 지금 생각하면 지휘관의 판단이 옳았던 거다.

 

우리 속담에 '급하면 돌아가란 말'도 있다.

즉, 천리행군은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은 아닐 텐데 말이다.

 

물한리 계곡을 거쳐 황룡사 입구에 차를 세운다.

등산로 초입이다.

 

왼쪽 물한계곡은 철망이 쳐져 볼 수가 없다.

이 오지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어지럽힌 모양이다.

투명한 햇살을 받아 나뭇잎은 빛나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힌다. 

 

못내 아쉬움을 가진 채 20여 분 올라가니,

민주지산과 석기봉의 갈림길인 잣나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약 두 시간,

오늘의 목표는 지름길로~민주지산 정상~석기봉~삼도봉으로 해서 미니미폭포로 하산하는

약 6시간 코스이다.

 

단풍취 꽃이 한창이다.

 

두메담배풀도 보이고,

 

본지 며칠도 안 되었는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얼굴들이 환하다.

낙엽송과 잣나무들이 군락을 이룬다.

 

메꽃도 보이고,

 

가는잎구절초가 한창이다.

 

곰, 여인, 민초라는 이름의 구절초는 태초의 우리나라 건국신화에 나오는 쑥이다.

곰과 호랑이가 여자와 남자가 되어 곰은 쑥을 먹어 여자가 되는데, 바로 그 쑥이 이 구절초이다.


즉, 부인들이 갖추어야 할 필요 물질들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어, 야생의 풀이지만 선모초라고도

하며, 여자의 손발이 차거나 산후 냉기가 있을 때 긴요하게 달여 마시기도 했다.

 

고마리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계류를 건너 너덜지대에서 본격적인 산행 시작이다.

 

현재 고도 1,000m.

안내판과 손목에 찬 고도계가 일치한다.

오늘은 고기압으로 날씨가 좋으니 별로 오차가 없다.

 

바람소리, 이름 모를 새소리에 귀가 한층 맑아진다.

현재 고도가 산소의 농도가 가장 좋다는 800~1200m 사이라 정신이 한층 맑아지며

피로가 쉽게 회복된다.

 

된비알을 오른 지 두 시간 만에 정상 바로 밑 안부이다.

이곳 쪽새골의 현재 고도는 1,140m이니 이제 100m만 고도를 올리면 정상이다.

 

쑥부쟁이가 활짝 피었고, 약간 가파른 계단과 너덜의 연속이다.

드디어 <민주지산1,241m>정상에 올라 순직하신 용사들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

 

조망은 전방위로 거침이 없다.

산군(山群)의 파노라마가 펼져지며 가시거리가 능히 100여km는 되리라. 

 

민주지산(岷周之山)은 국립지리원에서는 졸 민(眠), 무주군지에는 옥돌 민(珉)자를 쓰며,

영동군지에는 산봉우리 민(岷)자를 쓴다.

민두루한산, 째보산으로도 불리어지는데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에서는 '백운산'으로

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 민주지산으로 바뀌었다 하는데, 이름 하나도 통일시키지 못하니 한심하기만 하다.

즉 주변의 높은 산군을 두루 조망하는 산이란 뜻인데, 민주산악회라는 깃발이 아래 대불리에

있다고 하니 정치하는 놈들이 이 산마저 더럽히려고 하는가?

민주란 말만 들어도 좌빨이들 때문에 기분이 잡치는데 말이다.


여담이지만 민주산악회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운길산을 좋아한다고 해서 한동안

운길산을 다니지 않았다  

산에서까지 정치하는 놈들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꾸불대는 도마령 위에 '각호산'이 지척이다.

 

오늘의 목표인 '석기봉'과 '삼도봉'으로 이어져 나간 웅장한 산줄기의 용트림이 나를 전율시킨다.

 

멀리 덕유산 줄기의 장엄함과 백두대간의 장쾌함이 내 가슴을 숙연하게 한다.

 

그동안 날만 잡으면 비가 와 거의 비를 맞고 산행하며, 이러한 조망을 즐기지 못했었는데 

모처럼 장쾌한 산군의 파노라마를 보니 심신이 상쾌하다.

 

깔따구인지 날개미가 극성을 부려 정상에서 오래 있을 수가 없다.

말하느라 입을 벌리면 들어올 정도로 많다.

비가 안 와 가을가뭄이 극심하니 벌레들도 만만치 않게 개체수가 늘어난 모양이다.

 

꽃잎은 현란한데 흰무릇인지 쇠물푸레인지 잘 모르겠다.

 

참으로 예쁘게 생긴'흰진범'이다.

 

중북부지방의 깊은 산골짜기나 높은 산에서만 나는데 현재 고도1100m를 오르내리고 있으니

이 꽃의 서식지로선 최적이다.

'백부자'라고 불릴 정도로 맹독성 식물이니 입에 넣어보는 것은 금물이다.

꽃 같은 새? 새 같은 꽃? 

흰진범이 무척이나 새를 닮았다.

 

부드러운 곡선과 따사로운 빛의 색에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정중동?

미나리아재비 과의 흰진범은 보랏빛을 띠면 '진범 ,이렇게 상아빛의 흰색이면 '흰진범'이라고

한다.

 

식용인 '이고들빼기'가 노랗게 수줍은 듯 피어있다.

 

영재가 오늘 산행길을 독도하고 있다.

 

정상을 올랐으니 좀 쉬자.

 

산행한지 세 시간이 넘어 벌써 오후 1시.

한참을 걸었으니 쉴 겸 조릿대 아래에 자리를 펴고 산에서 마시는 장수막걸리의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지나가는 산객이 우릴 부러워한다.

 

조릿대 군락 사이로 영재가 올라온다.

봉길이 따르다가 힘들어 나하고 보조를 맞추겠다고 한다.

허긴 나하고 보조를 맞춰야 편하지 워낙 천천히 하는 느림뱅이 산행이라.

 

지난번 가칠봉에서 딱 한 포기 보았던 '각시투구꽃'이 지천이다.

 

이 꽃 이름이 '투구꽃'인데 자신의 나라와 부족을 지키기 위해, 투구를 쓰고 전쟁에서 싸우다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모습이 바로 이 꽃인가 싶어 잠시나마 숙연하게 바라본다.

원래는 까마귀 머리를 닮아서인지 오두(烏頭)라는 이름도 있으며, 까마귀 부리처럼 생겼다

해서 '오훼'라고도 하는데 한참을 들여다보니 짙은 보라색이 무서워 보인다.

 

어느 지방에서는 '돌쩌귀'라고도 하는데, 돌쩌귀란 방문을 여닫는 문을 문설주 기둥에 고정해

놓으려고 쇠로 고리를 만들어 문을 여닫게 하는 쇠붙이를 말한다.

이 꽃은 보기와 달리 강력한 독이 있어 사약을 만들 때도 쓸 정도이며, 사냥을 나갈 때 화살촉에

이 꽃의 진액을 발라 썼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꽃이 예뻐 한 잎 따 입에 넣으면 아리고 따갑다고 하니 아주 조심해야 한다.

 

중풍치료제로도 오래전부터 써오고 있으며, 아주 적은 양을 복용하면 뱃속이 더워지고 위, 장,

간, 신장 등이 튼튼해진다고 한다.

 

'산괴불주머니'도 보이고, 현재 고도 900m이다.

 

산대장인 봉길이 긴급제안을 한다.

지리산 등반 시 허리를 다쳤던 문성이 상태가 안 좋으니 석기봉과 삼도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산하자고 한다.

 

안전이 제일이지!

나도 막걸리 한 병을 다 마시고 석기봉을 오르려니 한심했었는데 속으로 잘됐다 싶어 쾌재를

부른다.

 

몸이 잰 사람들은 정상까지 한 시간 반이면 되고, 특전사 장병들은 특수훈련으로 한 시간이면

충분했을 텐데 6부 능선에서 진눈깨비가 오면 정상엔  당연히 폭설일 것이라고 아무도 예측을

못했을까?

 

몸이 젖었을 때 하산을 시작했으면 고작 30여 분만에 안전한 곳으로 내려왔을 텐데

지휘관의 당시 판단에 대해 참으로 아쉬움이 크다.

 

민주지산은 위험한 곳이 전혀 없지만 고산지대에선 고도 100m에 약 0.65도의 온도차이가 난다.

'범의 꼬리'인지 '노루 꼬리' 인지 꽃 이름을 모르겠다.

 

이 꽃을 몰라 도감을 찾아보는 등 한 시간 반을 소비하였으나 '노루참나물'이 아닌' 누룩취'로

결정했다.

비슷한 꽃 중 천궁, 구릿대, 뚝갈, 기름나물, 흰꽃바디나물 등이 있다.

 

'개우산풀'이라고도 하며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라는데, 누룩취 등을 포함한

우리나라 산야에서 자라는 모든 풀과 꽃은 약용과 식용으로 쓰이는 매우 우수한 식물들이다.

 

현재고도 600m. 

가을국화의 대명사인 '쑥부쟁이'가 한창이다.


벌개미취와도 비슷하게 생겨 전문가들도 쉽게 구별이 안간다고 하는데, 꽃으론 분간하기 힘들고

잎사귀로 분간하는데 잎사귀에 쑥부쟁이는 톱니가 나있지만, 개미취는 밋밋하고 길쭉하다.

 

작년인가 추석특집 드라마 '쑥부쟁이'에서, 자식들에게 다녀온 아버지가 쑥부쟁이 밑에서

쓸쓸히 죽어가던 장면이 떠 오른다.

 

대장장이의 11남매 중 맏이인 소녀가 집안 일을 돌보며 쑥을 잘 캐 쑥부쟁이라고 불리었는데,

어느날 나물을 캐다가 화살을 맞아 다친 사슴을 구해주고 내려오다 멧돼지 함정에 빠진 사냥꾼을

구해준다. 

끝내 이루지 못한 사냥꾼과의 사랑에 나물바구니를 옆에 끼고 나물을 뜯다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산등성이에 많은 꽃들이 핀다.

그 중에서 연한 보라색이 비치며 노란 꽃술을 지닌 꽃송이가 소녀가 항상 간직하고 다닌 구슬

(구해줬던 사슴이 준)과 같다고 해서 꽃을 쑥부쟁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계류에 발을 담그니  5시간여의 산행으로 피로해진 발에 생기가 돌며 몸의 탁기가 없어진다.

 

오늘 우리가 머무를 산속의 숙소이다.

제법 넓은 방에 집기도 잘 갖춰졌고 방값도 저렴하다.

 

미국산 갈비살에 소주 한잔 하고 밖에 나오니 하늘의 별이 쏟아진다.

 

2009.  9.  16.

숙소에서 출발한지 30분 만에 도마령(840m)정상의 '각호산' 등산로 입구이다.

 

시간이 남아 잠시 상주의 북장사에 들린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새롭게 채색된 극락보전의 단청이 오색창연하다.

 

이채롭게도 대웅전이 없고 명부전이 있다.

 

문성이 단청을 촬영하니 저 돼지같이 탐욕스럽게 생긴 스님이 못 찍게 나무란다.

 

중생을 계도하는 불자가?

이 삼라만상에 주인이 어디 있으며, 모든 사물을 누구든 볼권리, 알권리가 있는데,

시주도 안하고 절만 둘러보니 심통이 난 모양이다.

 

허긴 이정도 불사를 일으켰으니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

입구의 호화로운 일주문부터 짜증이 났었는데, 이 절에 들어온 이후엔 계속 짜증이다.

절에다가 왜 이리 큰돈을 발랐는지 종교는 가난해야 하는데 탐욕이 문제로다.

 

멀리 그 유명한 <희양산998m>을 줌으로 당긴다.

그 아래 신라의 고찰인 봉정사는 일 년에 4월 초파일 한번만 열린다는데

금년에 희양산 등산을 약속하고 지키지 못한 아쉬움에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옆 산이며 청와대의 뒷산인 북악산과 흡사하다.

 

험하고 위험구간이 많다는데 내 실력으로 등반할 수 있을지 숙고해야겠다.

 

대아산 산줄기의 고개를 넘어 선유동 쌍곡을 거쳐 '군자산(948m)'입구에 들어선다.

 

앞에 보이는 산이 군자산이다.

 

누굴까?

 

참으로 아쉬움이 많은 민주지산이다.

조국을 위해 훈련 중 순직한 장병들에게 고개 숙여 다시 한 번 명복을 빌며

이 땅에 또 다시 이런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

 

                                                2009.  9.  16일 민주지산 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