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7.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을까?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더럽고 치사할 뿐, 이별의 아픔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폐암으로 전날 작고한 영선이 발인에도 못가고, 배낭을 둘러맨 체 산으로 직행함은 잘 한일일까.
우리나라는 집안의 혼사가 있을 경우에 장례식 등 경조사에 참석을 못하게 하는 관행이 있다.
옳은 관행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야박하다.
경사에 마(魔)가 낄까봐서일까 ?
어쨌든 집사람하고 싸우기 싫어서 문상 후 장지까지 못 갔으니 비겁한 일이다.
양수역에 내려 '부용산' 등산안내도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철길을 따라 800m 올라가니 등산로 들머리에 약수터가 있어 약수 한 모금으로 숙취 겸
갈증을 날려 버린다.
주변 주목나무에 빨간 열매가 달려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장수목의 상징인 주목나무는 속살이 붉다.
택솔이라는 항암성분이 있어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주목나무에서 추출한 항암제로 유방암,
난소암에 큰 효과를 보았고, 말기 폐암환자에 투여한 결과 30%가 증상이 호전 되었으며,
다른 장기에 전이된 폐암환자 48%가 종양의 크기가 줄었다고 한다.
문제는 환자 한 사람당 필요한 2g을 위해선 주목 30그루가 필요하다고 하며, 성장이 몹시 느려 7cm 자라는데 100여 년이 걸린다고 한다.
미국의 주목은 0.01%가 들었고, 우리나라 주목엔 0.22%가 들었다 하니 나무도 우리나무가
더 좋은 모양이다.
'소백산'에 천연기념물 244호로 200~500년 된 주목 10,000여 그루가 능선을 따라 100여 그루씩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으며 '오대산'에도 많다.
'태백산'에는 3,900여 그루가 산자락과 정상부근에 흩어져 있으며, 평균나이 200년(30~920년)이
되어 빛이 선명하고 신비롭다.
정선 두위봉에는 우리나라 최고령으로 1,800년 된 주목나무가 있다.
낙엽이 쌓인 숲속 길로 접어든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가 지천이며, 노간주나무도 많이 보인다.
숲은 편애하지 않는다.
숲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는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낙엽 밟는 소리가 사각사각 댄다.
철새들은 겨울이 오니 다 날러 갔겠지만 텃새라도 있어야 하는데 새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급경사를 올라오니 많이 덥다.
체온방출 및 보온을 해줘야만 생체리듬을 바로 잡아주기 때문에,
가을, 겨울등산엔 옷을 하나씩 벗어가며 등산하고, 휴식 시엔 하나씩 더 입는다.
직경 60cm가 넘는 황벽나무가 보인다.
1년에 0.6cm씩 굵어진다 하니 수령이 100년이 넘었다.
얼마 전에 희천이 아우가 세상을 떴다하며 서글펐던 심정을 토로한다.
간이 많이 상한 상태에서 벌에 쏘여 죽었다하는데 그 심정이 애절하다.
유난히 많이 따랐던 동생이라 부모 때보다도 더 슬펐고
<아우야! 천당 가는 길에 휴게소가 있다면, 거기서 편안하게 쉬고 있어라,
이 형이 가면 천당에 같이 가자꾸나.~>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저민다.
나 역시 몇 해 전에 윗동서가 김해의 한 야산에서 하산 중 벌에 쏘여 저세상으로 갔는데,
친구 한명이 등반 중 "과일 먹을 때 벌이 달려들면 쫓지 말고, 옆에 한 덩어리 던져줘라.
거기로 몰려들지 않겠나." 하며 지혜를 빌려준다.
난 간이 나쁜 사람에겐 주저 없이 '벌나무'를 권한다.
벌나무란 벌이 좋아해서 봉목(蜂木), 또는 산청목이라 하는데,
몸속의 독을 흡착하여 배출하는 제독 작용을 하는 성분으로 몸속의 피를 깨끗하게 하여,
과다한 콜레스테롤을 분해해주어 순환계, 신부전증, 고혈압에도 효과가 있으며,
특히 간질환에 뚜렷한 치료 작용이 있다고 한다.
간에 쌓인 독을 풀고 간세포를 살리는 효능이 있으며 현저한 이뇨작용이 있다.
부작용이나 독성은 별로 알려지지 않아 부담없이 다려 먹을 수 있다.
이밖에도 느릅나무와 헛개나무도 간에 도움이 된다.
얼마 전 남산 걷기 때 간암 초기인 전병태 총장의 아우에게 벌나무를 권한 적도 있다.
희천이에게 구해준 벌나무 한 봉지를 벌써 보냈다하니 그의 어진 마음을 어이 헤아릴까.
이제 좀 쉬자.
돌 없는 육산이지만 급경사를 올라오니 숨이 차다.
물 한 모금에 갈증이 없어지고,
숲 냄새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에 탁기가 없어지며 생기가 돈다.
마지막 된비알이다.
어느 산이든 정상에 이르는 길은 급한 경사이다.
숨을 몰아쉬고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올라가라 하는 모양이다.
양평군에서 많은 노력과 돈을 들여 정상 바로 밑에 설치한 전망대이다.
망원경이 있으며 쉼터로선 최적이다.
뿌연 연무 속에 검단산, 예봉산, 운길산이 희미하게 조망이 된다.
가을바람에 풀잎 스치는 소리가 스산하지 않고 푸근함은 친구들만의 오붓한 산행이어서 일까?
막걸리 한 잔을 놓고 잠시 고 '김영선 친구'의 명복을 빌며 묵념을 한다.
드디어 정상인 부용산 366고지이다.
빛이 토양까지 미치지 않도록 정상 주위에는 소나무요, 아래에는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니
이산도 전형적인 혼효림(Mixed)이다.
피톤치드와 생강나무 잎의 천연방향제가 머리를 시원하게 해준다.
근처에 청계산(658m)과 형제봉이 있어 연계산행이 가능한데 약 6시간 걸린다고 하니
다음엔 해야겠지.
부용산은 산이 푸르고 강물이 맑아 마치 연당에서 얼굴을 마주 쳐다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높이 366m로 비교적 야산이다.
사실은 여기가 정상인 부인당 고분이 있는 곳이다.
예전부터 산 정상에 부인당이라는 묘소가 있어 항상 궁금했는데 전설이 있는 고분이다.
옛날 한 왕비가 시집간 첫날 밤 왕 앞에서 소리내어 방귀를 뀌게 되었다. 크게 노한 왕이 그 다음날 이곳으로 귀양을 보냈는데, 쫓겨난 왕비가 아들을 잉태하여 갖은 설움과 모진 역경 속에서 달을 채워 왕자를 낳았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니며, 귀에까지 들어갔다. 밤사이에 아무도 방귀를 뀌지 말아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은 그 소년으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왕비를 불렀으나 왕비는 궁궐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살다가 죽었는데,
그 무덤이 산 정상부에 있는 이 '고분'이라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이 산에 오르는 것이 금기시되어 왔다고 하며, 산에서 땔감을 취한다든가, 성안에 우물을 발견하면 곧 죽는다고 한다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
신원리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낙엽이 너무 많이 쌓여 올라온 길로 하산하기로 정하고 낙엽을
밟으며 내려선다.
인생의 지나온 길, 앞으로의 길 또한 알 수 없다.
채움보다는 비움으로 그냥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대자연에 순응한다.
앞만 보며 그 무엇을 찾아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해 달려온 나의 삶과 수많은 사연들,
이제는 숨고르기를 하자.
내 인생은 나만의 역사이고, 남을 위한 역사가 되지 못하는데, 아직 난 남긴 것도 뚜렷이
없고 남길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벌써 우리 나이는 말하고 싶지 않은 중년을 지나 장년의 나이다.
아직은 청춘이고 싶은데 볼품없이 시들어가는 육체의 슬픔을 잊고자 산에서 봄부림 치는 걸까?
아직도 남아있는 헛 욕심이 많아, 버리고 살아야 함은 잠시 스쳐가는 자기위안이 아닐까 싶다.
그저 비우고 또 비우자.
단풍이 익어가며 가을이 하산한다.
지난주 잠시 왔던 한파에 시름없이 나뭇잎은 떨어지고, 숲의 1Ha가 44명이 1년간 숨쉴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해 준다는데, 이 숲에 우리만 있으니 온갖 호사를 누린다.
특히 비타민D의 원천인 음이온이 도시의 14~70배를 주며 노화를 방지해주니 우린 늙지 않겠지..
솔방울이 벌어진 것을 보니 오늘, 내일 비가 올 것 같다.
옛 어르신들은 솔방울을 실에 매달아 날씨를 예보했다고 하는데 생활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감국화'가 곱게 핀 논두렁길을 걸어 나오니 주막이 우릴 반긴다.
원두막 바닥에 '사마귀' 한 마리가 기고 있다.
빨리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지, 참 오랜만에 보는 사마귀는 불안하면 위협 자세를 취하는데,
이놈은 겁이 없다.
암컷은 교미가 끝나면 수컷을 잡아먹는데 이제껏 살아 있으니 암놈인 모양이다.
세계적으로 약 2,000여 종이 있다 하며, 녹색 또는 이놈과 같이 갈색 나뭇잎, 마른잎, 가끔
나뭇가지, 선명한 색채의 꽃 등으로 위장도 한다.
영어이름으로 'Mantis'라고 하는데 즉 점쟁이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 곤충이 초자연적인 힘을 가졌다고 붙인 이름이다.
원두막에서의 동동주 한 잔에 등산의 긴장이 풀어진 듯 마음들이 편한 모양이다.
영선아!
참 고생 많이 했다.
이젠 좋은 곳에서 편히 영원히 쉬어라.
아름다운 이별을 못해 정말로 미안할 따름이다.
2009. 11. 7 부용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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