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83 주금산

김흥만 2017. 3. 24. 20:57


2009.  12.  2.

오늘 올라갈 주금산 주능선이 안개 속에 꿈틀거린다.

 

봉우리를 몇 개나 넘어야 할까?

오늘 올라야 할 산 이름도 모르고 사전 정보도 없으니 그냥 올라가자.

힘들다 보면 쉬운 길도 나오겠지 그게 우리네 인생이고 삶이니 말이다.

 

희천이 사업장인 광릉CC를 지나 확보되지 않은 등산로를 찾아 45도 이상의 급경사를 20여 분

올라가니 다리가 벌써 후들거린다.

 

대암산 솔봉(1,129m)에서도 무릎이 아프지 않았는데 급경사를 올라가려니 무릎이 쑤시기

시작하며, 초반부터 힘이 받혀주질 않는다.

오늘 산행은 고전을 할 것 같은데 스스로 선택한 시간과 장소이니 참고 묵묵히 올라설 수밖에

없겠지. 

 

30여 분 오르니 철조망이 쳐진 희미한 능선길이 나오며 임도로 내려선다,

차세대 에너지를 일부 책임 질 물박달나무가 지천이다,

 

수피에 기름이 많아 대체에너지 대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인 나무이다.

 임도에 내려서니 산행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좌우로 자작나무숲이다.

북방계 나무로 백두산 근처엔 엄청난 자작나무 숲이 있으며, 지난겨울 선자령 등반 시에도

많은 군락지를 본적이 있다.

 

예뻤던 나뭇잎은 화려하게 수놓다 모두 떨어지고, 줄기만 하얀 속살을 보이며 서있다.

신비감과 경외감이 들게 하며 문득 나도 이 속에 벌거벗은 채 서있고 싶다.

 

자작나무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약 20~30m 정도 자라는데, 껍질은 약용, 유피 등으로 쓰고 

목재는 박달나무와 같이 단단하며, 벌레도 잘 먹지 않아 가구도 만들고, 조각도 하기에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경판의 일부 재료로 쓰기도 했다.

 

껍질은 하얗고 윤이 나며, 종이처럼 얇게 벗거져 껍질에 불을 붙여 사용을 했으며, 그림을 

그리고 글씨도 썼다 한다.

결혼식을 올릴 때 화촉(華燭)을 밝히는데 여기에서 화(華)에 해당되는 나무가 자작나무이고

촉(燭)에 해당되는 나무가 거제수나무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무 중간 중간에 무수한 구멍이 나 있다.

아마도 지난봄에 수액을 많이 채취한 모양인지 벌거벗은 나무의 아픈 상처가  날 부끄럽고

미안하게 한다. 

 

임도를 벗어나도 등산로가 확보되지 않는다.

대강 방향을 짐작하고 험한 길로 올라서 능선을 타고자 시도를 하다가 잡목에 눈을 찔린

인영이의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일 없어야겠지.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으면 철수하기로 하고 확인을 하니 크게 다치진 않은 거 같다.

 

40~50도의 급경사 길을 오르려니 숨이 막힌다.

어제 낮부터 마신 술이 이제나 깨는지 머리도 좀 아프다.

 

참나무, 서어나무 등을 베어내니 햇볕을 많이 받는 이곳에 애기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나오고

있다.

 

햇볕을 좋아하고 독점하기에 소나무 밑에는 다른 나무들이 자라기 힘들다.

또한 수분도 엄청 필요하기에 욕심이 매우 많은 나무로 다른 식물과 공생하기 힘들다.  

 

이어지는 된비알을 올라서니 멋있는 소나무들이 지천이다.

 

소나무는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이 유난히 소나무를 좋아해서일까?

금강송, 처진소나무, 은송, 금송, 백송, 울진 봉화에서 나오는 춘양목, 곰솔, 나한송, 반송, 관음송,

안면도의 안면송, 울진의 미인송 등 엄청난 이름들이다.

 

나무줄기가 붉어 적송( 赤松)이라고도 하나 이는 일본식 이름이고,

주로 내륙지방에서 자란다고 해서 육송(陸松)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여인의 자태처럼 부드러워

여송(女松)이라고도 한다.

늘 푸른 바늘잎나무로 키는 20~30여 m 정도 자라며, 껍질은 거북이 등처럼 세로로 넓게 갈라진다.

 

솔방울이 습기를 물어 펴져 있으니 내일은 비가 올 모양이다.

옛사람들은 개구리, 새의 행동, 지렁이의 활동, 햇무리,  달무리 등을 보며 날씨를 예측하기도

했다.

 

정상 바로 밑 마지막 깔닥이다.

 

더 이상 올라설 데가 없고 정상 표지석도 없다.

현재 내 고도계는 675m이고, 희천이 고도계는 725m 인데 참 모를 일이다.

 

오늘은 정상주가 없으니 과일과 과자 등으로 요기를 하며 담소를 한다. 

두 시간이나 걸려 올라왔는데 20여 분 지나니 하산을 재촉한다. 

산에 오르는 것은 쉬운데 오래 머무르는 것은  참 어렵다.


천천히 주변의 조망을 즐기며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야 하는데, 뿌연 안개 속에 천마산이

보일 듯 말듯 조망된다.

 

웅장하고 빼어난 자태는 없으나 아기자기한 산행의 맛을 느낀다.

사람 때를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깨끗함을 보존하고 있는 이 산은 낙엽 썩은 부엽토가

노천 탄광처럼 새까맣다.

 

산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다.

산은 사람과 하늘이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곳인데 안개와 구름이 사방을 가려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지 못하고 마음에만 담는다.

 

바람소리 들리지 않으니 까마귀 떼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생태교육시 '새'공부가 가장 어려워 딴청을 피웠더니 알턱이 있나.

새의 울음소리는 서양에선 '기쁨의 노래'라 하고, 동양에서는 '구슬픈 울음소리'라고 한다.

학자들은 새의 울음소리가 짝을 찾고, 자기의 영역표시를 하며 건강을 표시한다는데 동,서양의

시각차이가 이렇게 큰 것일까?

 

낙엽 쌓인 길을 10여 분 내려가니 뚱뚱이 푸들 한 마리와 젊은이가 올라온다.

초행길임을 알리고 길을 물어보니 '조기'만 내려서면 헬기장 밑에 길이 있으며, 이정표가

있다고 하는데 일곱 개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며 한 시간이 넘었는데도 이정표가 나오지

않는다.

분명히 '조기'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 젊은이는 충청도 사람인 모양이다.

 

오래전 여행 중 당진의 한 모텔에서 잔 후 아침 신문을 사러 나온 적이 있다.

'저기'가면 있다고 해서 슬리퍼를 신고 무려 4km를 걷다가 만난 소방관에게 물었더니

'조기' 가면 된다고 한다.

다시 1km나 걸으니 신문 파는 장소가 나온다.

 

슬리퍼를 신고 무려 10여km를 걸었더니 발가락과 발등은 다까지고 집사람은 기다리다

잔뜩 화가 나 있다.

나도 충청도 사람이지만 그 덕에 '여기' '조기' '저기의 거리 개념을 알았는데 오늘 꼼짝없이

당하는 모양이다. 

 

헬기장을 두 군데나 지나니 삼거리길 이정표가 나온다.

 

이런!

철마산 3.9km, 주금산(813m) 4.4km라니?

한 시간 전 정상에서 정상석이 없어 이상 했는데,

수려한 비금계곡이 어우러져 마치 비단결같은 비단산으로 불리는 주금산 정상의 옆 봉우리를

'철마산'으로 알고 올라간 바보들이 돼버렸다

 

철마산은 음지 마을의 주산으로 옛날에 장군이 암굴에서 철마를 타고 나왔다는 전설이 있는

화악산 줄기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정상에는 철마산성 터가 있고, 주위에는 높고 험한 산줄기기 이어진 천혜의 요새이다.

불암이라는 절벽에는 장군이 나왔다는 바위굴이 있는데, 어느 장군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바위굴엔 장군이 말을 매어두고 사육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는데 보질 못해 서운하다.

 

산은 정상을 올라가야 하나 위험하고 체력이 고갈되면 적당하게 물러서는 것도 좋다.

어차피 정보 없이 오른 산이니 고맙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친구  '성기'가 정성껏 차려놓은

술상을 맛봐야겠지.

 

정약용 선생의 '하피첩'이 나를 울린다.

깊은 산속에서 이렇게 애절한 시를 보게 될 줄이야.

 

목적지인 팔야리가 2.5km 남았다.

 

발목까지 덮는 낙엽 길에 친구와 보폭을 맞추며 마음을 열고 자연을 흡수한다.

 

높지만 교만하지 않고, 넓지만 자만하지 않는 삶의 자세'

요란스럽거나 화려하지 않은 무뚝뚝한 능선에서 자연 앞에 선 나는 새삼 겸손해진다.

 

저건 나무의 암일까, 얼마나 아플까?

 

'해협산'에서 무수히 보던 나무들의 모습인데, 이산에선 처음 보니 때가 타지 않은 건강한

이로다.

 

의식이 거의 없는 홀어머니 병구완을 하며 살고 있는 하늘이 내린 효자 성기가 정갈하게

차려준 술상을 맛보며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기구한 사연과 아픈 과거의 이야기를 절절히 들으니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멘다.

언제나 행복을 찾으려나.

 

                      2009. 12.  2.  주금산을 철마산으로 알고 오른 날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