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82 양구 대암산 솔봉<1,129m>과 추가인생 김흥만

김흥만 2017. 3. 24. 20:53


2009.  11.  19.

대암산은 말한다.

"힘들고, 쉬고 싶을 땐 언제든 자기 품에 안기라고"

저 깊은 골짜기 사이로 계곡을 올라가면 60년 만에 개방된 '대암산'이다.

 

이정표를 보니 여기에서 약 1.8km 포장도로를 올라가야 등산로 입구다.

 

오늘은 나 김흥만의 제1차 추가인생이 된지 만 36년이 되는 날이다.

1973년 9월27일 증평 제37보병사단에 입대하여 훈련병 6주차를 끝내고 보충대로 가던 날,

101보, 103보, 105보충대와 후방에 배치될 병력을 다 호명하고, 직할대, 보안대, 헌병대 등

특수병과까지 다 호명이 된 상태에서도 날 호명하지 않아 난 37사단에 자대 배치되는 줄 알았다.

 

그 순간 "103보 추가 이병 김흥만"하며 날 호명한다.

가슴이 뜨끔하며 영락 없이 최전방이구나!  

한숨이 나온다.

월남도 가는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하며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갖는다.

 

증평에서 군용 백을 메고 서울행 군용열차에 올라타 이른 새벽 용산역에 도착한다.

고개를 못 들게 하는 호송병들의 눈초리에 지레 겁이 나 주변을 둘러보지도 못한 채 

춘천행 군용열차로 갈아탄다.

 

갓 훈련을 마친 이등병들의 초췌한 모습들과 완장 찬 헌병들의 삼엄한 모습에 아예 기가 질린다.

지금 보면 멋지기만 한 북한강의 수려한 물길들이 우리 이등병들의 눈엔 지옥으로 가는 물길로

보인다.

 

한참 만에 도착한 103보충대. 

블록 담에다 윤형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보충대는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영락없는 포로수용소이다.

 

2일 후에 번쩍거리는 대위 계급장을 단 윤모 대위가 찾아왔다.

진천중학교 3년 선배이자 형님 친구인 윤 대위는 둘째 형님이 보충대에 날 면회 왔다가 규정상

불가하여 되돌아갔다 하며 모든 게 잘될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4일차에 보충병들을 소집하여 자대 배치명령을 내린다.

2, 12, 21, 15, 7사단 등 전방사단 병력을 다 호명하고 난 또 부르지 않는다.

 

보안대나 헌병대 등 소위 끗발 있다는 특과로 빠지려나?

그때나 지금이나 특과는 신(神)과 장군(將軍)들의 영역이고, 우린 어둠의 자식들이니 기대도

하진 않지만, 윤 대위가 다녀가서 혹시 103보충대에 자대 배치 되려나 궁금해진다.

 

순간 "21사단 추가 이병 김흥만" 하는 게 하닌가.

순간 난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이젠 죽었다 하고 많은 부대 중에 하필이면  21사단이라니?"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고 하는 인제 원통보다도 더 북쪽에 있어 죽어서나

나온다는 죽곡리 죽포리, 임도 못보는 임당리, 원혼이 많은 원당리, 원혼이 춤추는 팔랑리가

있다는 곳인데,

 

소양호에서 LVT라는 배를 타고 인제 선착장에서 군용트럭으로 갈아탄다. 

눈이 내리는 비포장 길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이 양구 21사단 보충대이다.

군용백과 온몸에 황토 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들이 가관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막사에서 2일을 보낸 후, 63, 65, 66연대를 호명하며 역시 난

부르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오늘도 어김없이 "66연대 추가 이병 김흥만"이니,

 

대암산 밑의 임당리 66연대 정문안으로 나를 실은 군용트럭은 들어간다.

최전방부대라 병사들의 눈초리는 살기를 띠며 날카로워 지레 주눅이 들지만

있지도 않은 누나 자랑으로 너스레를 떨어가며, 글씨를 잘 쓴다는 평가를 받아 드디어

S-4에 배치된다.

 

이 날이 1973년 11월 19일이요, 오늘이 2009년 11월 19일이니 

대암산에 내 첫 발길을 들인 게 만 36년 전인가?

 

증평에서 이곳 양구 대암산까지 오는 동안에 3번의 추가 인생이 되었으니,

내 젊음을 불사른 대암산은 군대시절의 꿈을 꾸는 날은 어김없이 나타났고,

어느덧 어머니의 산이 되었다.

이후로도 추가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영등포역, 영등포시장역 지점장을 거쳐 방배서지점장으로 재직하며,

난 최고 성적을 연속 올려 지점장으로서의 최고의 명예인 '국은인상'을 받는다.

 

다음 해엔  전년에 올린 높은 실적에 따른 과다목표로 허둥대다 성적이 엉망 되어 보직해임

직전까지 이르지만 국은인상의 자격에 의해 계속 지점장직을 수행하고, 이어 광명지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정년퇴직을 하였으니 이 또한 추가인생이다. 

 

철산지점장으로 이동 후 일산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던 중 오른쪽 손가락이 마비되어 온다.

원래도 안 좋았기에 좀 심해진 탓이려니 하며 한숨을 짓지만,

종합검진에서 '뇌종양과 척수공동증'이라는 희귀병을 진단 받는다.

 

수술이 늦어지면 전신마비에 이은 사망이라나?

수술은 매우 어렵게 진행되며 3명 중 2명이 사망이라니 사망률 66%인가,

TV드라마, 소설, 영화 속에서나 나오던 이야기가 바로 나의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수술이 성공하여 사망직전까지 갔던 몸이 회복되어 건강한 삶을 살고 있으니 이 또한

추가인생이 아니겠는가.

 

추가인생은 계속 이어진다.

척수공동증이라는 질병은 선천성으로 분류되어 보험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삼성생명과

4개월간의 지루한 싸움과 공방 속에 삼성생명 측의 임시위원회 결의에 의하여 760만원이라는

거금을 추가로 보험급여를 지급받는다. 

이 또한 추가인생이니 인생이 참 재미있다.

 

이것으로 추가인생이 끝나는 걸까?

병원과 관공서의 판단으로 3급 장애판정을 받고,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장애연금을 신청하니

멀쩡한 내외모를 보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며, 서류를 제출하니 역시 지급불가 판정을 내린다.

 

이후 공단에서 요구하는 검사결과표를 제출하고, 6개월간 지루한 공방과 재심 끝에 장애연금

지급판정을  받는다.

장애연금도 추가로 받으니 모든 것이 추가인생이 되어 버렸다.

 

36년 만에 오르는 대암산은 늘 거기 있었다.

언제나 그리던 마음의 고향이자 현역 시 늘 바라보던 대암산 솔봉.

4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여기 있었는데 봉우리는 선뜻 달려오지 않는다,

 

솔봉까지 등산로가 왕복 14.4 km정도이니 만만치 않겠지.

이곳을 찾는 이들의 작은 소망을 들어주고자 작은 돌탑들이 들머리에 서있다.

 

산은 늘 앞에 있다.

이 대자연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완성되었을까?

능선 길을 오르내리며 거대한 자연을 가슴에 품는다.

 

같은 곳을 향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우정이요 우리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다음 산은 어느 산일까 미리 생각을 하니 아마도 나는 역마살이 단단히

낀 모양이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그저 배낭을 둘러메고 나오면 가슴에 호연지기가 길러지고

막걸리 한잔에 모든 근심 걱정은 없어진다.

 

나무에 뱀 한 마리와 새 두 마리가 있다.

 

관리소에서 매우 신경을 써 나무에 표찰을 매달았다.

다릅나무, 느릅나무, 산목련, 복자기나무, 고로쇠나무, 층층나무, 다래나무,

그리고 황벽나무와 너무나 비슷한 들메나무도 있다.

민주지산에서 들메나무 군락을 보았는데 이곳에서 보니 너무도 반갑다. 

 

속칭 연애골이라는 광치계곡을 오른다.

 

현재 고도 350m, 기온은 영하 5도의 추위에 완전무장이다. 

 

갈대와 억새사이로 천천히 고도를 높인다. 

나무사이로 호랑이도 만들었고 고라니, 멧돼지도 보인다.

이곳 약수터에서 약수 한 잔으로 갈증을 달래고, 다음 휴식 장소는 1.8km 위에 있는

옹녀폭포이다.

 

가시가 날카로운 음나무가 있다.

두릅나무과이며 엄나무, 개두릅이라고도 하며, 키는 10~25m에 이르고 나무껍질은 회백색

으로 약용이며. 뿌리와 어린잎은 식용이다.

 

옛날 농촌에서는 잡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음나무 가지를 대문 위에 꽂아두기도 했으며,

신경통, 관절염, 피부병, 상처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휴! 쉬자.

사람 人에 나무 木자의 합성어라 휴(休)는 사람이 나무 밑에서 쉬는 것을 뜻한다. 

나무는 우리들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안정적인 정서를 준다.

 

산과 나무에 색채를 더했던 가을의 향연은 끝났고,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며, 이미 깊은 겨울잠에 빠진 대암산의 나신(裸身)을 즐긴다.

 

변강쇠의 전설이 깃든 '강쇠바위'이다.

 

옹녀와 변강쇠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위쪽 계곡에서 Sex를 나누었는데, 이를 보고 크게 노한

산신령의 지팡이를 얻어맞은 옹녀는 그곳에 엎어져 바위가 되었고, 강쇠는 굴러 이곳에

남근 모양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의 이 바위는 강쇠바위이고, 50m 위쪽에 옹녀의 엉덩이

모양을 한 옹녀폭포가 있다. 

 

옹녀폭포가 나를 반긴다.

폭포는 얼음이 얼어 물과 어우러진 빙폭을 연출한다.

 

옹녀의 엉덩이라 하여 '옹녀폭포'인데 이 연유로 옛 부터 이 광치계곡을 연애골이라

불렀다고 하며 워낙 사람의 발길도 없고 조용한 산중이니 산중연애가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60년 만에 개방된 은둔의 산.

대암산의 깊은 계곡은 고도 740m까지 물길이 이어진다.

산은 물을 넘지 않고 물 또한 산을 넘지 않는다.

 

이 소나무는 수령이 얼마나 되었을까?

둘이 안아도 남으니 두 아름이 넘는다.

소나무는 1년에 평균 0.6cm 정도 두꺼워진다고 하니까 족히 300~400년 수령은 되었겠다.

 

다른 산에선 보기 힘든 갈짓(之)자로 난 등산로가 참 편하다.

지그재그 길은 별로 힘들지 않고 오히려 다리의 피로를 풀어준다.

한라산 돌길에서의 무릎 아픔도 오늘은 전혀 없다.

 

발목까지 쌓인 낙엽의 오솔길은 너무나 부드럽다.

 

각자의 굴곡진 인생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황혼의 목표는 같다.

한줄기 바람처럼 살아가고파, 이 산 저 산 떠도는 바람처럼,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를 하며 

낙엽 쌓인 길을 걷는다.

 

솔봉까지 0.3km 남았다는 이정표 앞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10여 분 올라가니 0.6km 더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별로 쉬지도 않고, 두 시간 반을 올라왔는데 잘못된 이정표에 쓴 웃음이 나온다.

 

주능선으로 올라서니 칼바람이 매섭다.

귀도 시리고 손도 얼얼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솔봉 바로 아래에 1968년도에 축조된 벙커가 나온다.

 

솔봉(1,129m) 정상이다.

팔각정 앞에 잔설은 군데 군데 남아있고 하늘은 파랗다.

 

저 앞 6.9km 거리의 대암산 주봉이 흰 눈을 쓰고 자태를 뽐낸다.

용늪은 아직도 통행불가이다.

 

한국전쟁 때의 펀치볼지구 전투,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도솔산지구 전투의 중심 격전지로

국군에 의해 수복된 대암산.

아직도 군사 작전지역으로 민간인 출입금지인 통제구역인 대암산 정상(1,304m)의 바로 밑인

1,280m에 위치한 '용늪'은 동서 약 150m, 남북 약 100m 정도의 부정형으로 '큰 용늪'과

'작은 용늪'이 있다.

함경북도와 백두산 장지연못에 이어 3번째 발견된 고층습원으로 찾아보기 힘든 생태계의

보고이다.

 

사조류가 군락을 이루어 습지를 뒤덮고, 구름패랭이, 비로용담, 금강초롱 등 귀한 야생화가

있으며 람사르 협약 제1호로 가입되었고, 인근의 대우산과 함께 천연보호구역이다.

이밖에 창녕우포늪, 전남 장도습지, 순천만, 무재치늪, 오대산습지, 제주 물영아리 등도

습지협약에 등록되어 있다.

 

생태계에선 매우 귀중하게 보호하고 있으나 일반인의 눈에는 그냥 평범하게 보이며,

환경의 중요성과 귀함을 몰랐던 옛날에는 용늪에 전투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한겨울에는

병사들이 즐기기도 했다.

 

이 끝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깨달았을까?

시간이 멈췄고 자연의 장엄함에 숙연해진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오르막길, 마음이 평안한 내리막길을 걸으며

자연은 위대하고 신비롭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4시간 째 산행

마음이 맑아지니 무념무상(無念無想)이다.

 

꾸미지 않아 아름다운 친구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솔직함과 애써 난척하지 않는 소탈함이 좋다.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깊은  배려와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눔의 기쁨을 맛보며 행복해 할줄 아는 소박한 친구들이 참 좋다.

 

아무리 힘들고 욕을 해대며 싸워도 이내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끈끈한 친구들아!

나 그대들이 있어 정말 행복하다네.

 

고장 난 보일러 덕분에 찬 바닥에 이불까지 깔고 쇠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을 한다.

밤은 깊어가고 별은 쏟아지는데 멀리 춘천에서 원태가 달려온다.

위험한 밤길과 산길을 달려왔으니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보일러를 고친 숙소에서 숙면을 취하고, 춘천의 소양강 처녀를 만나러 간다.

 

춘천의 관광과 음식을 못 사줘 안타까워하는 원태의 넉넉함이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준다.

우정을 나눠주는 기쁨을 맛보며 행복해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원태 형!

그대의 마음만 받고 떠나네.

 

                                           2009.  11.  20  대암산 산행 후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