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2.
뉴스에서는 대설주의보라고 한다.
등산화 끈을 졸라매고 집을 나서니 벌서 3cm 이상 쌓였고 세찬 눈보라가 안경을 때린다.
설경을 찍고자 조금 일찍 출발해 능선으로 오르니 순백의 향연이 시작된다.
산은 어떤 얼굴을 보여줄까?
언제나 같은 모습인줄 알았는데 순백의 눈 사이로 산은 나신(裸身)을 보여준다.
신갈나무에 서서히 설화가 피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겨울을 대표하는 경치는 산자락에 서있는 외로운 소나무라고 했는데,
푸른 소나무 가지에 소담스럽게 흰 눈이 쌓이고, 녹색과 흰색의 배합이 겨울 풍광을 자랑한다.
소나무는 늙어 가면서 기품을 더 한다.
나이 들수록 기품이 더해가는 소나무는 육체와 영혼이 쇠락하는 인간을 위로하며 안심시켜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문득 법정 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 속은 적막하다' 중에서 '복을 많이 지으십시요.'라던
글귀가 생각난다.
복은 어느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것,
그렇다면 새해 인사말을 이렇게 고쳐야겠네?
"새해에는 복을 많이 지으십시오!" 라고.
흔히 복은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즉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복을 바라고, 빌고, 기대고, 그러나 복은 '돌아오는 것'이다.
스스로 지은 만큼 돌아온다.
복을 많이 지어, 흘러넘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복의 근원'이 되시길 빌어본다.
어제 혼인을 일주일 앞둔 아들의 함이 나간 후 밤새 잠을 못자고 뒤척이던 아내를 두고
나만 친구들과 눈의 향연을 즐기며 산행을 하니 짐짓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 장성하여 김흥만, 고영순의 아들 승욱이가 아닌 가장이 되어 한승희의 남편으로 독립하니,
아들의 떠남이 대견하기도 하고, 허전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눈보라가 심하다.
방풍 자켓의 모자를 하나 더 쓴다.
다행히 기온이 올라 춥지는 않다.
아이젠을 찬 발걸음 소리가 뽀드득 뽀드득 들려온다.
하얀 눈 쌓인 길을 걸으며 문득 배우 반효정님이 2009년 연예대상에서 말한 공로상
수상소감이 생각 난다.
< 문득 백범 김구선생님께서 애송하셨다는 시가 떠오릅니다. '눈 내린 길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훗날 다른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배우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깨끗한 눈길 함부로 걷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나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내 삶을 살며 눈길을 걸었을까?
내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모질게 하진 않았는지.
또 한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 연말이 지나 연초가 되니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상념들이 무수히 일어난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엔 아직도 멀었나 보다.
자식 놈 혼사에만 온통 신경쓰다가 이제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요즘 배운 출장식 호흡법이 익숙하지 않아 숨이 차다.
출장식 호흡법이란 2초간 마시고 4초간 내쉬는 방법으로 즉 들이 마시는 숨 보다 내쉬는 숨을
길게 해 몸의 탁기를 몰아내면 숨이 차지 않는다는데 아직은 어림도 없으니 꾸준히 체중을 빼며
노력할 수 밖에 없다.
혼사가 큰일은 큰일인 모양이다.
왜 그리 번거롭고 군살이 많은지?
번거로움 1호<예단>
예단이란 것은 과거 여자로써 갖추어야 할 자질 중 바느질 솜씨를 중요하게 여겼을 때
신부의 바느질 솜씨를 보여 주기위해 시어머니 옷을 한 벌 지어 보내서 유래가 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시댁가족은 물론 친척들까지 한가지씩을 해주는 걸로 발전이 되었고,
이 일이 번거로워 현물보다는 현금으로 보내는 것이 유행이다.
그 금액이 신부집에 대한 잣대가 되고, 심지어는 예단과 예물때문에 정신적 물적고통이
커 혼사를 망치는 사례도 빈번하다.
따라서 예단이란 신부의 바느질 솜씨를 보여 주기 위함이 목적이니, 현물과 현금에
욕심내지 말고 남한테 자랑하기 위해서 보다는 검소하게 최소한의 예의정도만 갖추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번거로움 2호 <함과 예물>
함은 혼례 전일까지 혼서와 혼수를 넣어 신부집에 보내는것으로 예전에는 '납폐'라고 하였다.
오동나무, 은행나무나 나전칠기 등으로 만든 함 속에는 결혼을 허락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예를
올린다는 뜻의 혼서지, 음양결합을 뜻하는 청홍비단의 혼수, 오곡주머니, 목화씨,붉은 팥,
노란콩, 찹쌀, 향 그리고 예물을 넣는다.
혼서는 여자로써 일부종사의 절개를 상징해 여자가 죽을 때 관속에 까지 넣는다.
허지만 시대가 변하여 요즘에는 한복, 양장, 반지 등 패물을 넣어 보내는데,
난, 사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반지 등 귀금속과 옷종류를 넣어 보낸다.
원래는 커플반지만 해주고, 주식 등 유가증권이나 예금통장으로 대하고자 하였으나,
주변의 반대가 워낙 심해 이내 뜻을 접고 만다.
번거로움 3호 <폐백>
폐백(幣帛)이란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신부가 인사를 올리는 예인 '현구고례
(볼 見, 시아비 舅, 시어미 姑, 예절 禮)'를 할 때 시부모에게 드리는 예물이다.
즉 시아버지에게 드리는 '밤 대추 고임'과 시어머니께 드리는 '육포나 닭'을 말한다.
즉, 신부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뵙는 예절이디.
따라서 시부모만 '폐백'을 받을 수 있는데, 요즘은 자식들이 귀해 딸들의 부모도 받으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의식 중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대추를 던져주는 것은 '아들을 많이 낳아 집안의
자손을 번성케 하라'는 의미이고, 시어머니가 밤을 던져주는 것은 '조상들의 제사를
잘 모셔라'하는 의미이다.
따라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가 아닌 그 집안의 며느리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는
의식이다.
번거로움 4호 <이바지 음식>
옛날 전통 혼례에서는 신랑이 혼례식을 치루기 위해 신부 집으로 '초행'을 한다.
혼례식 후 신부 집에서는 사위에게 '큰상'을 차려준다.
큰상이란 회갑잔치나 혼례식 때 1자(약 30cm)가 넘도록 쌓은 상을 말한다.
그걸 신랑이 다 먹을 수 없어 신랑은 먹는 시늉만 하고, 상을 물리면 그 음식을
그대로 신랑의 집으로 보낸다.
혼례식 후 3일째 되는 날 시댁으로 '신행'을 하며, 혼수, 폐백 등을 갖고 가는데, 그 음식이
바로 '이바지'이다.
이 음식으로 시부모에게 진지상을 차려 드리는데, 친정과 시댁의 음식문화가 달라
신부가 시댁식구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할 때 주의를 주기 위한 일종의 며느리 사전교육용
이라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폐백 후 신부에게도 '큰상'을 차려주는데, 이 또한 고스란히 신부집에게
보내진다.
따라서 서로가 보내주기에 생략해 버리면 되는데,
요즘에는 과시하기 위해 이바지에 거금 3백만 원씩이나 하는 '루이13세 꼬냑' 등을 보내는
못난 졸부들도 있다고 한다.
그냥 검소하게 약간의 음식을 준비하여 예의만 갖추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어느덧 정상 바로 밑의 깔딱이다.
빠른 사람이나 느린 사람이나 구분이 없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발걸음과 몸은 무거워진다.
천천히 걷다 쉬며 자연에 몸을 맡기자.
또한 잠시 쉬는 것도 등산의 매력이다.
휴! 정상이다.
몸과 마음이 티끌처럼 가벼워진다.
머릿속은 텅 비고, 이젠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자.
산은 갇혀있던 마음을 열게 해주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힘을 느끼는 정상은 서로가 하나 되는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정상주가 없어 서운한 마음을 안고 하산을 하지만 쌓인 눈길이 매우 미끄럽다.
동행한 소중한 친구들과 막걸리 한잔에 복을 빌어주며 덕담을 나눈다.
2010. 1. 2 서설(瑞雪) 속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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