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6. 05;30
3일 전 동창친구로부터 한통의 카톡메시지가 왔다.
"지난주 촬영한 장수사진을 빨리 받을 수 있느냐,
공교롭게도 영정사진 1호가 될 모양~~동창들에게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직접 통화를 한다.
사연인즉 "신장암(콩팥)이 진행 중이며, 암세포가 척추와
폐로 이미 전이되었고, 머리까지 전이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항암치료와 연명치료를 포기하고 존엄사를 선택
하겠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운명이 된 건가,
참 모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며 문득 예전 나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된다.
뇌종양과 척수공동증으로 통증이 심할 때는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대로 눈을 안 뜨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십 수천 번 했었지만 일단 사무실에 출근하면
내색을 하지 않고 참고 또 참았다.
내 담당 주치의는 바로 수술을 하지 않으면
3개월 이내 전신마비요, 6개월 내 사망을 하고,
수술을 하더라도 수술 중 치사율이 70%라는 선고를 한다.
내가 살 수는 있을까,
선택의 여지가 없어 절망에 빠졌지만 인명은 재천이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주치의와 운명에 모든 걸
맡기고 수술실로 들어갔었던 예전 생각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영정사진을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내가 미친 모양이다.
하려는 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니 이 또한
머피(Murphy)의 법칙이구나.
장수사진 촬영 세트장 설치와 조립을 도와주며 드라마
'야한 사진관'의 스토리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소원은
카톡 문자 메시지를 받는 순간 여지없이 사라졌다.
액자는 촬영인원이 많아 보정과 액자 공정상 4월 20일
전에는 전달이 어렵다.
동창친구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마음이 급해져
인화가 가능한 보정된 사진을 카톡으로 전송한다.
동창친구의 온화한 모습을 담은 장수사진을 보내며
촬영작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오랜 기간 장수사진 재능기부를 하는 사진작가는 무언가
감이 왔는지 촬영과 보정작업 후 우리 동창친구 몇 사람은
얼굴이 상당히 안 좋아 보인다며 많은 걱정을 했다.
말이 씨가 되는 모양이다.
옛 선조들은 윤달이나 윤년인 해에 장수사진과, 수의,
관을 준비하면 더 장수한다고 믿었다.
그 말을 믿은 건 아니지만 내가 괜히 오지랖을 피워 장수
사진을 추진하였는가 자괴심(自愧心)이 드니 말이다.
5년 전인 2019년 7~9월에 '아이유'와 '여진구'가 열연한
인기 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시체를 찾지 못했거나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저승에 들어가기 전 잠시 머무는
델루나 호텔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이야기였다.
요즘엔 '주원'이 연기하는 '야한 사진관'을 가끔 본다.
밤에만 여는 죽은 자들을 위한 귀객(鬼客) 전문 야한(夜限)
사진관에서 35세가 넘으면 죽는다는 사진사와 미녀
변호사가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과 생(生)과 사(死)를
오가며 펼치는 기묘한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다.
06;30
동녘하늘에 붉은빛이 한참 머물더니 세상이 환해지고
산길에서 활짝 핀 복사꽃을 만난다.
옛사람들은 귀신을 쫓는 나무로 으뜸은 벼락 맞은 대추
나무요, 가시 많은 음나무와 속이 붉은 주목나무라 했다.
그 밖에도 산사나무, 계피나무, 화살나무, 가래나무,
남천나무도 귀신 쫓는 서열에 올랐으나 음기가 강한 귀신을
쫓으려면 강한 양기를 가진 '복숭아'나무를 최고로 쳤고
무당들도 복숭아 가지를 많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복숭아꽃을 바라보며 친구에게 달라붙은 사신(死神)을
물리쳐 달라고 부탁을 한다.
< 복사꽃 >
충북 괴산으로 귀촌한 친구가 2021년 5월 9일 영정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했다.
벌써 영정사진을 신경 써야 하는 나이가 되었나라는 생각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었다.
카메라를 늘 가까이했는데 쓸만한 나의 영정사진이 있을까.
막상 컴퓨터 사진 보관함이나 스마트 폰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을 뒤져보아도 영정사진으로 쓸만한 마땅한 사진이
없다.
대부분 헐떡대며 힘들게 올랐던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라 영정사진으로 쓰기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언젠가 때가 되면 산과 들, 대자연이나 또는 특정한
장소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찍어 가족과 지인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나와 우리들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지 3년 만에 장수사진 촬영을 추진했다.
총 67명이 신청하였고 3월 25일~26일 양일간 63명이 장수
사진 촬영에 동참했으며,
입은 웃고 있어도 눈이 울고 있는 슬픈 사진도 싫고,
긴장하거니 근엄한 사진도 싫기에 사진작가에게 가급적
밝은 표정의 사진을 부탁했다.
1차 보정작업이 끝났다.
사진작가의 사진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퀄리티
(quality)가 높은 작품이 되었다.
친구 대부분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고, 실물보다 젊게
나왔으니 친구들 마음이 아직도 젊기에 사진도 젊게 나온
모양이다.
2024. 4. 6.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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