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4. 12;00
100년 만의 폭설이라는데,
창밖을 바라보니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14시
사무실에 앉아 있으려니 몸이 쑤시고 마음이 들뜬다.
또 역마살이 도졌는지 잠시 후 스패츠까지 찬 완전무장 복장에 카메라들 들고 한강에 나간다.
세찬 눈보라가 안경을 때리고 얼굴이 얼얼하다.
허긴 서울이 현재 영하 11도라니, 항상 3~4도 차이가 나는 이곳 미사리는 영하 14도 정도가 된다.
'설원의 향연', '신들의 향연'을 보며 눈길을 걷는다.
천천히 걸으며 눈바람에 얼굴이 시려 마스크를 쓰지만 몸과 마음이 티끌처럼 가벼워진다.
산책로에 쌓인 눈은 서서히 종아리까지 올라온다.
눈보라와 뿌연 연무 속에 예봉산과 검단산은 이미 가려져있고,
조정경기장은 깊은 정적이 감도며, 자귀나무, 전나무에 겹겹이 눈은 쌓인다.
끝없는 눈길 위에 추위를 무릅쓴 어느 여인은 누군가와 한없이 통화만 하고,
함박눈과 칼바람에 귀도 시리고 김 서린 안경을 닦는다.
스패츠 중간까지 올라오니 30cm 이상 쌓였다.
작년 태백산 눈 산행과 37년 전 양구에서 현역으로 복무 중 만난 눈 이후론 오랜만이다.
최전방에선 눈이 오면 병사들 몫이라 다들 눈을 싫어한다.
작전지역의 눈을 치우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기에 눈만 오면 이가 갈리고,
지친 졸병들 입에선 한숨이 나와 고달픔을 호소했는데, 어느새 역지사지를 잊은 모양이다.
고즈넉하게 서있는 정자에도 눈은 쌓이고,
머릿속은 텅 비고,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곧 있을 아들 혼사가 끊임없이 날 상념 속에 빠지게 한다.
결혼식은 잘 치룰 수 있을까?
친구들은? 하객들은? 화환은? 식사의 질은? 반응은? 끊임이 없다.
예식은 가족끼리 검소하고 엄숙하게 치루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과시풍조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청춘이 어느덧 할배의 신분으로 변환기에 있으니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한다.
법정스님은 세월이 덧없음이 아니고 자신이 변하는 거라 하는데,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온 나는 누구인가?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보며,
백범 김구 선생의 "눈 내린 길을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훗날 다른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 발자국을 따라 다른 사람들도 걸어오겠지.
가급적이면 발을 길게 끌며, 다른 사람들의 신발에 눈이 적게 들어가게 하리라.
설원을 누비며 걷고 있는 내가 행복하다.
배수관로의 지열에 의해 쌓인 눈이 일부 녹아 멋있는 풍광을 연출한다.
힘없는 겨울 억새에 눈이 쌓여 부러질 듯 위태롭다.
원색의 향연을 누리던 한강이 겨울의 흰 눈 속에 깊은 침묵 속으로 잠긴다.
꽁꽁 언 한강에 끝없는 '설평선'이다.
뿌연 연무 속에 새들은 어디론가 다 숨었고, 당정 섬이 정적 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눈보라 속에 태양은 숨었고 바람은 거칠다.
계속 얼굴을 때리는 하얀 눈은 나를 들뜨고 행복하게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헤맨 지 4km, 낙엽 길 10km를 걸은 것 보다 힘들다.
드러눕자.
부드러운 눈이 너무도 푹신하며 편안하다.
일어나지 말까?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설원이 너무도 순결하다.
때론 칼날 같은 설릉도 보이고 끝없는 설원이다.
무지하게 춥다
칼바람과 따사한 햇빛이 교차한다.
푸른 소나무 위에 소담스럽게 눈꽃이 피었다.
녹색과 흰색의 배합이 기막히다.
소나무는 가지의 힘이 약한데 저 눈의 무게를 부러지지 않고 감당할 수 있을까?
2010. 1. 4 눈 덮인 한강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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