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345

느림의 미학 778 산행은 미완성 <괴산 성불산 530m>

2023. 11. 15. 11;30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세상은 텅 비어 간다. 들판도, 산도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텅 비어가는데 유독 성불산만 소나무의 초록이 꽉 찼다. 예정보다 1시간 반 이상 늦게 도착한 괴산 성불산, 이 산속의 세상은 어떨까. 새로운 산을 오를 때마다 설렘이 가득하다. 이것 또한 역마살(驛馬煞)이 강한 산병(山病) 아니겠는가. 성불산 매표소 아주머니는 사방댐을 건너면 바로 등산로 입구라 했다. 난이도는 보통이며 정상까지 1시간 반정도, 빠른 사람은 왕복 2시간 반이면 된다고 한다. 충청도 아주머니의 말을 믿어야 할까. 미리 등산지도를 보고 자료 등을 확인했으면 처음부터 이 코스를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들머리부터 시작되는 급경사는 성불산 산행의 난이도를 추정하게 한다. 여러 번 ..

여행 이야기 2023.11.19

느림의 미학 755 인왕산의 초콜릿 두 알

2023. 7. 1. 10;30 파란 하늘에서 무더위라는 불꽃을 땅으로 내려보냈나 보다. 염천(炎天)이 따로 없으니 말이다. 아직 11시가 되지 않았는데도 기온이 34도로 급상승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고, 습도 71%는 카메라 렌즈마저 삼켜 버렸다. 11;00 휴! 덥다. 더위와 다한증(多汗症)으로 온몸은 이미 다 젖었고, 유난히 더위에 약한 체질이라 인왕산 트래킹 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친구가 초콜릿 두 알을 준다. 덥고 힘들 땐 당분섭취가 피로해소에 도움이 된다. 내가 평소 메고 다니는 크로스백이나 등산조끼엔 비상용으로 사탕이나 초콜릿 세알 정도가 들어있다.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저혈당으로 탈진한 사람이나 쓰러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늘 휴대를 하는 거다. 실제로 3년 전 코로..

여행 이야기 2023.07.02

느림의 미학 751 베트남 다낭을 가다.

2023. 5. 31. 00;30 내가 탄 비행기엔 비즈니스석이 없고, 비상구에 위치한 좌석이 다른 좌석보다 앞뒤 간격이 조금 넓어 3만 원 더 비싸다. 비상구 앞 지정된 좌석에 앉자 승무원이 다가와 "유사시 승무원 지시에 의해 문을 개방하고, 승무원을 도와 승객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간단하게 교육을 시킨다. 며칠 전 제주 출발 대구행 비행기에서 어느 탑승객이 비상구를 강제로 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다른 탑승객들은 공포에 떨었고, 다행히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 생각나 앞에 앉은 승무원에게 질문을 하자 지금 내가 탄 비행기와 동일기종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저 문을 왜, 어떻게 열었을까. 같은 A321기종으로 우리나라에 23대가 운행 중이라는데 한번 호되게 당했으니 이번..

여행 이야기 2023.06.08

느림의 미학 750 샹그릴라를 찾아서 2(대관령 국민의 숲)

2023. 5. 25. 05;00 대관령 옛길 숲 속 밤새도록 물소리가 들렸다. 계곡 암반을 휘돌아 내려오는 물소리가 그렇게 맑은 줄 예전엔 몰랐다. 뻐꾸기가 날아와 밤새 뻐꾹뻐꾹 울어댔다. 그리고 새벽이 되자 잠에서 깬 동박새, 직박구리도 날아왔다. 이어서 꾀꼬리까지 왔으니 여기야말로 속세를 벗어난 진짜 별유천지(別有天地)로구나. 새벽 2시쯤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손가락에 통증을 느껴 잠이 깼다. 왼손이 퉁퉁 부었다. 산에 오기 전 '방아쇠 수지증후군'을 앓고 있는 손가락에 일주일 간격으로 마취주사를 두 번이나 맞았는데 아직도 통증을 느끼니 난감하다. 매년 8개월~1년 주기로 마취주사를 맞았고, 이번에는 15개월을 버티었기에 간격이 길어져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여행 이야기 2023.05.27

느림의 미학 749 샹그릴라를 찾아서 1(정동심곡 바다부채길)

2023. 5. 24. 수많은 차량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차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바라본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물이 그득하고, 산(山)은 여린 잎의 연두색에서 벗어나 녹색으로 변했다. 황량했던 겨울산의 속살이 여름의 녹색으로 채워지자 자연의 공기는 사뭇 부드러워졌다. 논가에서 한가롭게 먹이사냥을 하는 쇠백로를 바라보다 깜빡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나는 나만의 이상향인 '샹그릴라(shangrila)'를 찾아 떠났다. 그곳이 어디일까, 한참을 달린 후 해와 달, 바닷물이 춤추고 바람이 노래하는 바로 그 샹그릴라를 만났다. 10;46 '심곡항 부채길'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다. 충북 진천에서 수학여행을 온 남녀학생들의 목소리가 싱그럽다. 이곳에서 내 고향후배들을 만나다니, 내가 상산초교 52회요, ..

여행 이야기 2023.05.26

느림의 미학 744 서산 도비산(島飛山 351.5m)의 꿈

2023. 4. 19. 08;00 봄이 온다는 입춘(立春)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봄의 기운은 추울 때 나 모르게 이미 이 세상에 도달해 있었고, 입춘이 지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4월의 낮기온이 29도까지 오르니 여름의 기운도 벌써 도착한 모양이다. 흰꽃의 정수라 불릴 수 있는 벚꽃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한꺼번에 사라진 세상의 빈자리를 연두색과 녹색이 차곡차곡 메꿔 나간다. 칙칙한 갈색에서 연두색으로 흐르는 산과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의 정경을 바라보며 간밤에 꾸었던 꿈이 생각난다. 느닷없이 찾아온 급성 루게릭병으로 아픈 친구랑 포천 명성상 억새군락지를 함께 올랐고, 뇌경색을 앓고 있는 친구랑 술잔을 나누기도 했다. 파킨슨 병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는 친구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노래를 불렀고, 담..

여행 이야기 2023.04.22

느림의 미학 718 한탄강 주상절리길에서 가을을 떠나보내다.

2022. 11. 18. 10;20 만추(晩秋)의 계절, 11월의 청량한 아침, 가을을 이대로 떠나보내기 싫어 텅 비어가는 들판을 달려 철원 주상절리길에 도착한다. 자연못지않게 인간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4년 전 2018. 1. 18일 이곳을 찾았을 때는 포성만 요란하게 들렸었다. 사람 인기척 없던 이곳이 사람과 차량이 북적이는 땅으로 바뀌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인가, 차라리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게 만든 경천동지(驚天動地)라 표현하는 게 어울리니 아마도 금환락지(金環落地)인 모양이다. 아찔한 벼랑에 낸 주상절리길 3.6km를 보며 중국 장가계의 잔도를 떠올린다. 은퇴 후 2010. 12.17일 장가계 천문산 귀곡잔도(鬼哭棧道)에 올랐다. 그들은 해발 1400m의 깎아지른 절벽에 죄수들을 동원하여..

여행 이야기 2022.11.20

느림의 미학 715 덕유산 산자락으로 스며들다.

2022. 10. 28. 06;50 이태원에 핼러윈 인파가 10만 명 이상 모인다는 뉴스를 보며 무언가 표현하기 힘든 불길한 생각과 함께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 좁은 구역에 시(市)급 인구인 10만 명이나 몰린다니, "사고가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텐데~" 뜬금없는 걱정을 하며 덕유산 산자락의 오솔길을 걷고자 숙소를 나선다. 07;00 썰렁하다. 무주 평지의 현재 기온은 영상 2도지만 여기 산속은 해발 600m가 넘기에 실제 온도는 영하권으로 냉기(冷氣)가 온몸을 감싼다. 온도를 측정할 때는 지표면에서 공기가 잘 통하는 백엽상 안 1.5m 높이에 걸린 온도계로 잰다고 초등학교 시절 자연 시간에 배웠다. 산에서는 온도가 다르다. 해발고도가 100m 정도 높아질 때마다 대략 0.65도 정도가 낮아지니 지금..

여행 이야기 2022.11.01

느림의 미학 714 삶의 순간들(함양 대봉산 1,228 m)

2022. 10. 27. 11;15 원정 산행이 얼마만인가? 2020년 6월 24일 안갯속 백두대간 능경봉(1,123.2m)을 오른 후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 원정 산행을 중지하였으니 어느새 2년이 흘렀다. 세월 참 빠르다. 사람들은 세월 빠름을 순식간(瞬息間)으로 표현한다. 즉 눈을 한 번 깜짝하거나 숨을 한 번 쉴 만한 극히 짧은 동안을 표현하는 '순식간'이라는 말이 이럴 때 절묘하게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12.15. 네 시간을 달려와 함양 대봉산의 5분마다 탈 수 있는 8인승 모노레일 앞에 선다. 근무자는 대봉산 정상까지 모노레일은 국내 최장 길이로 총 3.93km이며 정상까지 약 32분 정도 소요되고 왕복 1시간이 걸린다고 안내를 한다. 당초 모노레일로 대봉산 정상에 오른 후 빼빼재(원통..

여행 이야기 2022.10.30

느림의 미학 706 소쩍새를 찾아서

2022. 9. 10. 05;30 소쩍~소쩍♬♪ 소쩍새가 밤새 울었다. 예전 비슬산 휴양림에서 들었던 그 소쩍새 소리다. 2010. 5. 20일 새벽에 들었으니 무려 12년 만에 제대로 듣는 소쩍새 소리에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기고 숙소를 나선다. 어제 낮에는 30도를 넘는 더위였는데 호수가의 온도는 14도까지 떨어져 감겨오는 냉기에 몸이 움츠러든다. 기온차가 무려 16도인데 물안개가 피어오르지 않고 시간이 일러 윤슬도 보이지 않는다. 소쩍새가 어느 쪽에 있을까. 물 건너 피안(彼岸)의 버드나무에 있을까. 저쪽은 버드나무가 늘어진 언덕 즉 피안(彼岸)이라 생사의 경계를 넘어선 해탈의 세계요, 내가 서있는 곳은 번뇌에 얽매인 차안(此岸)의 세상이다. 고요함에 잠기었으니 침정(沈靜)인가. 자태가 한가롭고 단정..

여행 이야기 2022.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