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524

느림의 미학 792 누군가의 일상(日常)

2024. 3. 9. 05;00 지금 기온 영하 4도, 새벽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어도 우수, 경칩(驚蟄)이 지나자 공기는 사뭇 부드러워졌다. 산기슭 개골창에서 개구리가 운다. 다시 찾아온 꽃샘추위에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동사 (凍死)를 면할 수 있으려나. 황산숲길에 지난가을 밤과 도토리를 줍지 말라는 경고 현수막 앞에서도 버젓이 줍는 노인들로 인해 먹을 게 없어 청설모가 일제히 사라졌고, 아홉 마리의 너구리 가족도 본지 오래다. 이 녀석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망월천 천변을 따라 이성산 산자락으로 올라갔으면 다행인데 먹을 게 없어 집단폐사가 되었을까 걱정이 된다. 산모퉁이의 미선(美扇)나무는 꽃이 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여전히 겨울잠을 자는 중이다. 유난히 춥지 않은 겨울을 보냈으니 미선나무에게 냉각량..

나의 이야기 2024.03.09

느림의 미학 791 반성문

2024. 2. 25. 03;00 번쩍! 번개가 쳤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나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내가 죽은 걸까? 꿈에서 임사체험(臨死體驗)을 한 모양이라, 잠에서 깨고 혼돈(混沌)의 세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창밖 어둠 속에 눈이 내린다. 땅에 쌓이든 말든 눈송이는 하염없이 나풀거리며 지상으로 떨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한 친구의 돌연사로 며칠간 삶의 정체성이 흔들렸다. 며칠 전 심근경색으로 친구가 죽었다는 비보를 받고 잠시 멘털(mental)이 붕괴되었다. 그 친구는 작년 11월 양평에서 가을음악회가 끝난 후 가슴통증이 심하고 토할 것 같다며 대형버스에서 내려 내가 탄 승용차에 동승을 했다. 음악회 식사 메뉴로 나온 생선초밥을 먹었다 해서 식중독이 의심되어 강동성심병원 응급실을 향해 ..

나의 이야기 2024.02.25

느림의 미학 790 휴대폰을 끄고서

2024. 2. 17. 07;00 한 젊은이가 휴대폰을 보며 자전거를 달리다가 인도와 차도를 분리한 가드레일을 박고 넘어진다. 많이 다쳤으면 도움을 주려 접근을 하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난다. 안전모를 쓰지 않았어도 다행히 다치지 않았고 일어나는 동작을 보니 넘어진 경험이 많은 모양이다. 문득 예전 검단산 호국사 돌샘에서 물을 떠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다가 등에 짊어진 물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얼굴과 머리를 다쳤던 기억이 난다. 작년에도 멀쩡한 길에서 약간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면서 얼굴, 손과 무릎을 심하게 다쳤었는데 저 청년은 다치지 않았으니 젊어서 순발력이 좋은가 보다. 지하철을 타면 맞은편에 앉은 7명 모두가 휴대폰을 보고 있다. 길에서도 대부분 자라목이 되어 휴..

나의 이야기 2024.02.17

느림의 미학 789 하얀 눈썹

2024. 2. 9.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40여 일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세월 참 빠르다. 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예외 없이 말해 어느새 습관처럼 된 말 '세월 참 빠르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며든다. 지금 내가 느끼는 속도라면 다가오는 10년 세월도 훌쩍 지나가겠다. 이대로 사는 게 옳은 건지, 시간을 쉽게 보내지 않고 가는 세월 붙잡아 두려면 어떻게 내 삶의 모습을 바꿔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설 명절이라 아들 내외와 두 손자들이랑 오손도손 만두를 빚다가도 장난기 많은 두 녀석의 행동으로 모처럼 집안에 활기가 돈다. 내가 이 녀석들 또래였을 때, 설 전날이면 올망졸망한 7남매가 한방에 모여 야단법석을 떨었던 그 옛날이 그리워진다. 안방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

나의 이야기 2024.02.11

느림의 미학 788 트로트(Trot) 경연(競演)

2024. 1. 28. 어느새 새해도 1월 말이 다돼간다. 이틀이 하루처럼 지나가더니 언제부터인가 일주일이 반나절처럼, 한 달이 하루처럼 지나갔다. 썩을 대로 썩은 정치권의 내로남불과 치졸한 권력싸움을 보느라 지쳤기에 그들을 외면하고, 요즘은 트로트 경연대회인 MBN의 현역가왕과 TV조선의 미스트롯 3에 푹 빠졌다. 출연자들은 한결같이 각고의 노력과 훈련으로 회가 거듭 될수록 일취월장(日就月將)하고, 경연이 끝나면 경쟁상대를 안아주며 서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경연은 숨도 가쁘지 않은지 어느새 예선을 거쳐 준결승을 치르며 서서히 결승을 향해 치닫는다. 현역가왕에서 내가 응원하던 레트로(retro) 창법의 '신미래'는 떨어지고, 미스트롯에서 '복지은' 등 우승후보로 꼽는 가..

나의 이야기 2024.01.28

느림의 미학 787 허여(許與)의 우정

2024. 1. 13. 해마다 12월이 되면 하릴없이 몸과 마음이 바쁘기에 사람들은 세월 참 빠르다는 표현을 잘 쓴다. 섣달 그믐밤 12시가 되면 어김없이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울린다. 또 한 해를 보내며 나에게 미흡한 점이 있었던가, 삶에서 소홀했던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버리고 또 버린다 했지만 마음속에 아직도 버리지 못해 앙금이 남아있는 건 무엇일까 종소리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이 되자마자 마음의 여운은 슬그머니 사라졌고, 어느새 13일이나 흘러갔다. 알바생활 3년이 훌쩍 지나갔고, 다시 면접을 보고, 또다시 일 년짜리 근로계약서를 쓰고, 잠에서 깨 눈 뜨면 아침이고, 시간이 되면 터덜터덜 걸어서 사무실에..

나의 이야기 2024.01.14

느림의 미학 786 행복만점(幸福滿點)

2024. 1. 5. 왜 사니? 너는 행복하니? 지금처럼 사는 게 만족한가? 살다 보면 이런 질문을 하는 지인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그 질문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대체적으로 경제적 자유, 건강에 대한 염려, 삶에 대한 가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너에게는 불행과 후회가 있었는가?" "지금은 어떤가?"라고 반문을 하는데 대개는 그 질문에 대해 우물쭈물 답을 하지 못한다. 나는 거기에서 바로 답을 찾아 말한다. "네가 불행과 후회될만한 일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니겠는가"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대개 사회적인 지위와 풍족한 돈을 행복의 가치로 판단하는데 나는 행복의 가치를 어떻게 구분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를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큰 손주가..

나의 이야기 2024.01.06

느림의 미학 785 면돌아 안녕!

2023. 12. 31. 입술과 턱 주변이 쓰리고 아파 전기면도기 작동을 멈추고 거울을 보니 피가 맺혔다. 뭔 일이지? 전기면도기 망이 다 닳은 걸 모르고 쓰다가 날카로운 철망이 얼굴을 긁으며 상처를 낸 거다. 나는 턱수염을 밀 때 전기면도기로 한번 밀고 칼면도로 마무리를 한다. 수염이 많기도 하지만 털이 억세어 바로 칼면도를 하면 살갗이 아프고, 칼면도기의 칼 수명이 짧아지기에 두 번 면도를 하는 습관이 수십 년째 이어진다. 면도기를 들고 몇 년째 사용한 건지 생각을 해보니 무려 25년이 넘었다. 아들에게 군 생활 때 쓰라고 사줬던 '브라운 전기면도기'를 들고 잠시 상념에 젖는다. 나는 사람과 사물에 대해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2011년 11월 17일 철원 복주산 산행 시 안내산행을 했던 암컷 진돗..

나의 이야기 2023.12.31

느림의 미학 784 보고 싶어 눈물이 난다.

2023. 12. 28. 이맘때 자주 보는 것이 벌거벗은 나무의 모습이다. 나뭇잎을 몽땅 떼어버린 나목(裸木)은 태어날 때의 아기 모습과 비슷해 숨김이 없다. 그토록 화려하게 단풍 들었던 나무들의 모습은 간데없고, 북풍한설(北風寒雪)에 오들오들 떠는 나무들의 모습을 보며, 하루 전 스스로 자진(自盡)한 배우 故 이선균을 떠올린다. 경찰의 공개 소환조사에 임하며 잔뜩 겁먹고 긴장한 얼굴로 90도 폴더인사를 하는 약한 모습에 엄청난 이 파고를 제대로 넘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사와 매스컴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한 그는 끝내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고, 그의 소식을 뉴스로 전해 들으며 온종일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20; 20 TV에서 우연히 '코끼리 사진관'이라는 프로를 시청한다...

나의 이야기 2023.12.29

느림의 미학 783 텅 빈 의자

2023. 12. 24. 06;00 밤새 눈이 내렸고, 지금도 눈 내리는 세상은 설국(雪國)으로 변해간다. 크리스마스 캐럴(carol)이 사라진 성탄절 전날 새벽, 새벽 예배가 없고 트리도 점등이 되지 않은 교회 앞마당은 썰렁하기만 하다. 때마침 눈을 치우러 나온 교회관계자에게 점등을 부탁하니 흔쾌(欣快)하게 승낙을 하는데, 비싼 전기료와 민원이 많이 발생해 크리스마스 트리에 점등을 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괜스레 가슴이 휑해진다. 비단 교회 앞마당만 썰렁한 건 아니다. 세상인심도 사납고, 썩은 냄새만 풍기는 사람들이 정치판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고, 국민들은 한숨만 내쉬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07;00 잠시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며칠간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진 강추위로 오르지..

나의 이야기 202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