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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819 종이책을 읽는 여인

2024.  6.  25.  11;07나는 지하철을 타는 시간도 그냥 허투루 흘리지 않기에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님 조용히 지나갈까,   자리에 앉아 슬며시 주위를 둘러본다.  눈을 감았다.개념은 무념무상(無念無想)인데,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마음을 챙기는 명상'이라 할까. 옆사람이 모를 정도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들숨과 날숨이 끝나자 호흡의 감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잠시 명상(冥想)을 빙자한 '멍 때리기'를 하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생각의 물줄기가 터졌는지 별별 생각이 마구 떠오른다.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가방에서 꺼낸 책에 집중을 하고 내 앞 맞은편에 앉은 젊은 여인도 책을 읽는다. 지하철 좌석에 앉은 사람 거의 모두가 휴대폰을 보고있던지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데,책을 보는 사..

나의 이야기 2024.06.25

느림의 미학 818 '는개' 내리는 날

2024.  6.  23.  11;00새벽부터 내리던 '는개'가 잠시 그쳤다.여자경이 지휘하는 대전시향에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제5번 2악장을 연주하고 나는 그 음악에 빠져든다. 머리가 몽롱하다.교향곡을 한참 듣다가 깜빡 졸았나 보다.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려 창밖을 내다보니 잠시 멎었던는개가 다시 내린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제주도와 아랫녘에는 많은 비가 내린다는데 여긴 비 다운 비가 내리지 않고 는개처럼 찔끔찔끔 내린다. 비가 찔끔찔끔 내린다 해서 '찔끔비'라고 이름을 지어부를 수는 없는 노릇,옛 조상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불렀다. 지금같이 살짝 내리는 비를 '는개'라 했다.빗줄기가 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늘기에 는개라 했는데, 어느 친구는 는개라 했더니 '논개비'가 아..

나의 이야기 2024.06.23

느림의 미학 817 석천의 신 노인지반(新 老人之反)

2024.  6.  21. 11;20노인 한 사람이 '예수 불신 지옥, 예수 믿고 천당'이라는 피켓을 들고 8량짜리 전철 5호선 앞칸에서 뒷칸까지 왔다갔다 한다.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다니는데 군대식으로표현하자면 잘 숙달된 조교급이다. 저런다고 안 믿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까.내가 주로 다니는 5호선 강동역을 기준으로 저런 피켓을들고 신앙을 전파하는 노인이 세 명이다. 성심병원 4거리 그늘막에 노숙자급 노인 한 명이 있고,강동역 1번과 4번 출구를 연결하는 횡단보도에 쓰러지기직전으로 보이는 노인 한 명이 매일 땡볕에 피켓을 들고 앉아있는데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보면 믿던 사람들도 등 돌리겠다. 1번 출구 엘리베이터 앞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보이는 남녀가 정장을 한 차림으로 홍보지를 꽂은 ..

나의 이야기 2024.06.21

느림의 미학 816 악필(惡筆)

2024.  6.  15.지난 수요일 이수회에서 만난 동창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책 출간은 언제 할 건지,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동창은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훌쩍 이민을 떠났고, 반세기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 그날 처음 만난 거다. 50년 동안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의 간격(間隔)을 좁혀 주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서로에대해 많이 알게 해준다. 내가 책을 낼 수가 있을까.나의 재주 없는 글이 책으로 나오면 수많은 글쟁이들이 비웃지나 않을까, 남을 의식하는 건 아닌데 아직은 졸필이니 한동안 고민을 해야겠지. 글은 곧 그 사람이고,글씨는 그 사람의 얼굴이라 했다. 초등학교 때는 연필로 공책에 글씨를 썼고,중학교 때는 잉크를 찍은 펜으로 글씨를 썼다.고등학교에서도 처음엔 펜..

나의 이야기 2024.06.15

느림의 미학 815 아! 너무 멀리 와버린 인생길

2024.  6.  12.  13;00이수회(二水會) 집합 시간이 되자 음식점은 우리 일행으로 금세 꽉 찼다. 2001년 10월 23일 12명이 모여 만든 이수회,어느새 23년 세월이 훌쩍 지났으니 참 오래도 만났다. 길동과 둔촌동에서 만나다가 서초동으로 옮겼고,다시 교대역으로 장소를 바꿨고 새로운 장소에서 오늘 처음 만나는 날이다.  매월 30명 안팎으로 모이다가 시간을 저녁시간에서 점심시간으로 바꿨다.그러자 친구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오늘은 무려 60여 명이 참석하겠다고 신청을 했으니 야간활동에 제약을 받던 친구들이 그렇게도 많았나 보다. 멀리 충북 괴산, 전북 전주, 경기 화성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온 친구도 보인다. 인사차 한 바퀴를 돌며 인생 5단계에서 임서기(林棲期)를 지나 방랑기(放朗期)에..

나의 이야기 2024.06.13

느림의 미학 814 300원짜리 미끼를 덥석 물다.

2024.  6.  8.  11;00며칠 전인 6월 5일.떡밥을 좋아하는 붕어처럼 나는 미끼를 확실하게 물었다.그것도 165,000원씩이나 문 거다. 나이가 들면서 피부의 노화는 급속하게 진행이 된다.매일 칼면도를 하는 습관이 있어 면도 후에는 로션크림을 발라야 피부가 땅기지 않기에 스킨로션을 꼭 바른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쓰는 로션이 매우 세다는 느낌이 들었고, 얼굴 여기저기에 저승반점과 새까만 잡티가 수없이 생기는 바람에 로션을 예전에 쓰던 '아모레'로 바꿨지만 잡티는 점점 커지고 많아진다. 잡티와 점(點)을 빼야 하는데, 지난봄부터 여름에 뺄까 겨울이 오면 뺄까 차일피일 미뤘다. 그날 단골 미용실에 들렀고,미사역 근처 피부 성형외과에서 점(點) 하나 빼는데 300원 정도로 행사를 한다는 정보를 받았..

나의 이야기 2024.06.08

느림의 미학 813 물 귀신

2024.  6.  5.내 고향 진천 백곡 저수지에는 동양에서 유일한 사이폰식 댐이 있었다. 장마철 물을 뺄 때는 사이폰(syphon) 원리에 의해 물이 수십 m 이상 하늘 높이 솟구치는데 그 장관(壯觀)을 보려 많은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사이폰(syphon)식 댐은 물의 방출구가 수면 이하에 있으면 포화증기압의 힘으로 수면보다 높은 장애물을 넘어서 물을 방류하게 되는 역 U자 관을 말한다. 진천이 행정수도 후보 유망지로 떠올랐을 때,1981년부터 1984년까지 백곡 저수지 확장용 댐 축조공사를 하였고, 댐은 게이트식 댐으로 바뀌며 사이폰식 댐은 허물지 않고 물속으로 수몰되었다. 진천 미사일 기지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여름에는 사이폰 댐 근처에서 '전투수영'을 하기도 했는데,그곳에선 수시로 일반인들의 익..

나의 이야기 2024.06.06

느림의 미학 812 두 번째 불쾌한 양보

2024.  5.  30. 08;20남산 트래킹을 하려고 전철에 오른다.강일역까지 차내는 붐비지 않고 조용하다. 상일역부터는 많은 승객이 타 시끄럽기도 하기에, 조용히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잠긴다. 2~3분 후에 주변이 소란스러워 눈을 뜨니 옆에 앉았던젊은 여성이 벌떡 일어나 앞에 선 할머니에게 자리를양보해 준다. 건너편 임신부석에는 남자가 앉아있고,참 오랜만에 자리양보를 하는 행동을 보며 미소가나온다. 난 며칠 전에 자리양보를 했다.고덕역에서 한 젊은이가 내 옆 임신부석에 덥석 앉는다. "여긴 임신부석이니 내 자리에 앉으라"며 비켜주었더니사양도 안 하고 당연한 듯 내 자리로 옮겨 앉았고,그 임신부 자리에는 또 다른 남성이 잽싸게 앉는다. 세상에 나이 먹은 사람이 건장한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다니 불쾌..

나의 이야기 2024.06.02

느림의 미학 811 개망초 명상(冥想)

2024.  5.  28.  08;30내가 근무를 하는 사무실의 베란다는 제법 넓어 6인용 야외식탁 4개를 배치하고도 여유가 있다. 안전유리와 철제기둥 앞에 아이들이 올라서지 못하도록작은 화분을 배치하여 작년엔 고추와 토마토 등을 심었는데 금년엔 아무것도 심지 않았다. 지상에서 8층까지 날아온 '개망초' 씨앗이 발아하여 며칠 전꽃망울을 터뜨렸다.                                뽑아버릴까 놔둘까 궁리를 하다 그냥 두기로 했다.개망초가 잘 있는지 수시로 들여다보다 정이 들었고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화초와 함께 똑같이 물을 준다. 8층이라는 높고 황량한 곳에 핀 개망초,꽃모양이 계란프라이를 닮아 계란꽃으로도 부르기도 하는개망초를 오늘도 들여다보며 잠시 명상(冥想)에 잠긴다. 봄부터 가..

나의 이야기 2024.05.29

느림의 미학 810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연천 고대산(高臺山 832m)

2024.  3.  23.  11;00전철을 타면 고대산에 갈 수 있을까,신탄리역으로 가는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고민하다 승용차로 고대산에 왔다. 사람들은 고대산(高臺山 832m)이 때 묻지 않은 산이라 했다.군 장병들이 곳곳에 폐타이어로 계단을 만들어 안전한산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해발 고도 832m로 그리 높지 않은 고대산,연천과 철원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등산이 허용된산(山)으로는 북한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산이라고 해궁금했던 고대산을 오른다. 고대산 들머리에 '금낭화'가 곱게 피어 나를 환영한다.  금낭화는 토질이 산성이면 흰색이나 연분홍색으로 피는데 꽃색깔이 붉은색에 가까우니 이곳 토질은 알칼리성에 가깝겠다. 시기가 늦어 얼레지와 바람꽃, 처녀치마 등을 기대하긴어렵겠지만 서울근교보다 개화기..

여행 이야기 2024.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