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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753 수신거절과 거리 두기

2023. 6. 20. 어젯밤 9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늦은 시간에 오는 전화는 경험상으로 보아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다. 전화기를 뒤집어 놓거나 터치해서 왼쪽으로 밀면 수신거절 멘트가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통화가 되지 않는다. 얼마 후 또다시 요란스럽게 벨이 울리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수신거절을 하고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개 모르는 전화는 발신인이 불분명하지만 내 전화에 번호가 등록이 되어있으면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분명하게 뜬다. 갑자기 온 전화의 발신인을 보니 별로 반갑지 않은 동창이다. 십 년에 한 번 정도 통화를 할까 말까 한 동창이라 달갑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수신거절을 한 거다. 이 정도 살았으면 편견이나 선입견, 소망편향이나 확증편향을 따질 필요도 없이 괜히 전화를 받기 싫은 사람이..

나의 이야기 2023.06.20

느림의 미학 752 종심(從心)은 덤 인생이다.

2023. 6. 18. 휴~덥다.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갔다. 여름의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가 보다. 구름 없는 파란 하늘에서 태양이 이글거린다. 저렇게 뜨거운 하늘이라서 옛 선인은 여름 하늘을 호천(昊天)이라 표현했던가. 옛사람은 봄의 푸른 하늘을 창천(蒼天)이라 했고, 여름하늘은 호천(昊天)이요, 가을하늘은 민천(旻天)이요, 겨울하늘을 상천(上天)이라 했다. 며칠 전 점심모임에서 글을 쓰는 것, 그리고 독서를 많이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헉~ 나에게 독서(讀書)라! 책을 읽는 즐거움은 내 평생의 행복이었다. 침대에서 잠들기 전 읽는 몇 페이지의 책, 식탁에서, 화장실 변기 위에서, 잠시 틈만 나면 어느 곳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습관이 평생 나를 지배했고 즐거움이었지. 그러나 은퇴 ..

나의 이야기 2023.06.18

느림의 미학 751 베트남 다낭을 가다.

2023. 5. 31. 00;30 내가 탄 비행기엔 비즈니스석이 없고, 비상구에 위치한 좌석이 다른 좌석보다 앞뒤 간격이 조금 넓어 3만 원 더 비싸다. 비상구 앞 지정된 좌석에 앉자 승무원이 다가와 "유사시 승무원 지시에 의해 문을 개방하고, 승무원을 도와 승객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간단하게 교육을 시킨다. 며칠 전 제주 출발 대구행 비행기에서 어느 탑승객이 비상구를 강제로 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다른 탑승객들은 공포에 떨었고, 다행히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 생각나 앞에 앉은 승무원에게 질문을 하자 지금 내가 탄 비행기와 동일기종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저 문을 왜, 어떻게 열었을까. 같은 A321기종으로 우리나라에 23대가 운행 중이라는데 한번 호되게 당했으니 이번..

여행 이야기 2023.06.08

느림의 미학 750 샹그릴라를 찾아서 2(대관령 국민의 숲)

2023. 5. 25. 05;00 대관령 옛길 숲 속 밤새도록 물소리가 들렸다. 계곡 암반을 휘돌아 내려오는 물소리가 그렇게 맑은 줄 예전엔 몰랐다. 뻐꾸기가 날아와 밤새 뻐꾹뻐꾹 울어댔다. 그리고 새벽이 되자 잠에서 깬 동박새, 직박구리도 날아왔다. 이어서 꾀꼬리까지 왔으니 여기야말로 속세를 벗어난 진짜 별유천지(別有天地)로구나. 새벽 2시쯤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손가락에 통증을 느껴 잠이 깼다. 왼손이 퉁퉁 부었다. 산에 오기 전 '방아쇠 수지증후군'을 앓고 있는 손가락에 일주일 간격으로 마취주사를 두 번이나 맞았는데 아직도 통증을 느끼니 난감하다. 매년 8개월~1년 주기로 마취주사를 맞았고, 이번에는 15개월을 버티었기에 간격이 길어져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여행 이야기 2023.05.27

느림의 미학 749 샹그릴라를 찾아서 1(정동심곡 바다부채길)

2023. 5. 24. 수많은 차량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차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바라본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물이 그득하고, 산(山)은 여린 잎의 연두색에서 벗어나 녹색으로 변했다. 황량했던 겨울산의 속살이 여름의 녹색으로 채워지자 자연의 공기는 사뭇 부드러워졌다. 논가에서 한가롭게 먹이사냥을 하는 쇠백로를 바라보다 깜빡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나는 나만의 이상향인 '샹그릴라(shangrila)'를 찾아 떠났다. 그곳이 어디일까, 한참을 달린 후 해와 달, 바닷물이 춤추고 바람이 노래하는 바로 그 샹그릴라를 만났다. 10;46 '심곡항 부채길'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다. 충북 진천에서 수학여행을 온 남녀학생들의 목소리가 싱그럽다. 이곳에서 내 고향후배들을 만나다니, 내가 상산초교 52회요, ..

여행 이야기 2023.05.26

느림의 미학 748 개근거지

2023. 5. 20. 11;00 "개근거지"라니? 조정경기장 행사장에서 초등학생 둘이 대화를 나눈다. '개근거지'라는 말은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즉 학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교를 하여 개근상(皆勤賞)을 받는 학생을 개근거지라 한다는 거다. 형편이 어려워 교외 체험학습이나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빗대서 개근거지라고 놀리는 말을 들으며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한다. 이 대목에서 "나 때는~" 이런 이야기를 쓰면 '라떼노인'이라고 핀잔을 받겠지. 사실 예전 학교나 직장에서 '개근'이라는 의미는 성실의 대명사였다. 담임 선생님이었던 고 정동환 선생님과 다른 은사들께서도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상(賞)의 종류로 우등상, 모범상, 개근상, 정근상 등 여러 상이 있지만 ..

나의 이야기 2023.05.20

느림의 미학 747 생(生)과 사(死)는 종이 한 장 차이

2023. 5. 13. 06;00 바람이 분다. 봄에 부는 새벽바람치곤 이례적(異例的)으로 강풍이다. 며칠째 계속되는 컨디션 난조로 어제 청주 큰 형님 팔순잔치에 못 갔는데 오늘도 여전히 몸이 무겁다. 새벽산책을 할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평소보다 한 시간 이상 늦게 집을 나선다. 뜰안은 떨어진 나뭇잎들로 엉망이고 바람에 놀란 고양이가 불안한지 처마밑에서 잔뜩 웅크린 자세로 빤히 쳐다본다. 내가 늘 오르는 동산인 황산에 가려면 육교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길을 건너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황당한 광경과 맞닥뜨린다. 소방대원 세 명이 누워있는 사람에게 급히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구급차에 태우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길바닥엔 쓰러졌던 사람의 핏자국이 선명하고, 주인 잃은 물병과 모자가 바..

나의 이야기 2023.05.14

느림의 미학 746 산다는 건 살아간다는 것

2023. 5. 7. 04;30 가로등이 동시에 꺼지고 암흑의 세상이 밀려왔다. 강풍이 하늘에서 먹구름을 밀어냈고 그 빈자리를 별이 채워 나간다. 스마트폰의 플래시 기능을 켜지 않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빛으로 가득한 밤의 도시에서는 웬만한 별들이 보이지 않는데 인공조명이 일제히 꺼지자, 동쪽하늘에선 '개밥바라기별'이 밝은 빛을 뿜으며 서쪽으로 향하고 국자모양의 '북두칠성'도 선명하게 보인다. 견우성(星)과 직녀성(星) 사이엔 은하수가 넘실거렸는데 조금 남은 도심의 빛 공해로 이들 사이에 있던 은하수는 사라졌다. 서쪽하늘에 조금 남은 먹구름은 달빛을 가렸고 북쪽하늘에서 보이는 별자리들이 나를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지수가 10 이하로 떨어지고 시커먼 밤하늘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별들이..

나의 이야기 2023.05.07

느림의 미학 745 엄니, 아부지 나 어떡혀!

2023. 4. 29. 05;00 엄니한테 칼국수를 안 먹고 편식한다며 충청도말로 '뒈지게' 혼나다가 잠에서 깨었다. 참고로 충청도에선 어머니, 아버지를 '엄니', '아부지'라 부른다. 꿈이었다. 최근 거의 매일 꿈을 꾸었고, 꾸었던 꿈이 너무도 선명하다. 밤 10시 취침해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자다가 새벽 5시 기상을 했는데 꿈에서 본 엄니, 아부지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거다. 요즘들어 엄니, 아부지를 꿈에서 자주 뵌다.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거도 아닌데 왜 그럴까. 잠을 자고 있지만 뇌파가 깨어있는 상태를 말하는 렘수면(Rem 睡眠)이 아마도 남들보다 오래 지속되는 모양이다. 10;00 창밖에 보슬비가 내린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아내가 말하는데..

나의 이야기 2023.04.29

느림의 미학 744 서산 도비산(島飛山 351.5m)의 꿈

2023. 4. 19. 08;00 봄이 온다는 입춘(立春)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봄의 기운은 추울 때 나 모르게 이미 이 세상에 도달해 있었고, 입춘이 지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4월의 낮기온이 29도까지 오르니 여름의 기운도 벌써 도착한 모양이다. 흰꽃의 정수라 불릴 수 있는 벚꽃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한꺼번에 사라진 세상의 빈자리를 연두색과 녹색이 차곡차곡 메꿔 나간다. 칙칙한 갈색에서 연두색으로 흐르는 산과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의 정경을 바라보며 간밤에 꾸었던 꿈이 생각난다. 느닷없이 찾아온 급성 루게릭병으로 아픈 친구랑 포천 명성상 억새군락지를 함께 올랐고, 뇌경색을 앓고 있는 친구랑 술잔을 나누기도 했다. 파킨슨 병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는 친구는 정상적인 모습으로 노래를 불렀고, 담..

여행 이야기 2023.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