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870

느림의 미학 763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2023. 8. 27. 06;00 열대야가 사라진 오늘새벽 모처럼 늦잠을 잤다. 너무 시원해 30분만 더 자고 일어난다는 게 무려 2시간을 더 자고 앞산에 오른다. 지난주 금요일이었지. 약속시간인 오후 1시가 되자 귀한 인연을 이어가는 선배와 옛 동료들이 지하철 강동역 밖으로 나온다. 88년 올림픽을 전후해 주택은행 둔촌동 지점에서 만났으니 무려 35년이 훌쩍 지난 인연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내 나이가 35~36살 때였다. 폐쇄적이고 개폼과 권위를 앞세우던 주택은행 인사부 문화가 싫어서 선택한 영업점이 둔촌동 지점이었지. 권위주의로 무장한 본점 참모부서는 체질상 어울리지 않던 나는 고객을 상대하며 직원들과 희비애환(喜悲哀歡)을 같이 할 수 있는 영업점이 은행에 입사한 처음부터 좋았다. 영업을 하며..

나의 이야기 2023.08.27

느림의 미학 762 아! 돌발성 난청이~답은 골든 타임(Golden time)이다.

2023. 8. 2. 10;00~ 8. 14. 24;00 12일간의 병상기록 그날이 8월 2일이었던가. 오전 10시쯤 나는 세상의 소리를 잃었다. 새벽 앞산에 올라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고, 알바 센터에서 에어컨을 켰는데도 온몸이 다 젖었다. 조금 힘에 버겁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 앉는 순간 오른쪽 귀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람소리만 들리고 세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게 뭔 일이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일부로 코를 풀어도 해결되지 않고, 혼돈(混沌)과 고통의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그날 14;00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당구장옆 이비인후과에 진료를 신청하고, 청력검사 데이터를 본 원장은 큰 병원으로 빨리 가야 된다며 소견서를 써준다. 늘 다니는 성심병원에서 진료를 ..

나의 이야기 2023.08.19

느림의 미학 761 기다리는 마음

2023. 8. 13. 04;30 22도 거대했던 태풍 '카눈'이 지나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잼버리(Jamboree)도 지나갔다. 그리고 시원한 새벽이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열흘 넘게 병치레를 하던 중 입추(立秋), 말복(末伏)이 지났고, 그러고 보니 처서(處暑)도 열흘밖에 남지 않았구나. 입원과 퇴원, 반복되는 통원치료, 무리를 하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스테로이드'라는 약물에 취해 자리에 누워 기운을 못 차린 지 11일째, 시원한 바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앞산에 오른다. 선탈(蟬脫)을 한 매미, 풀숲에서 숨죽였던 귀뚜라미가 일제히 떼창을 하자 오른쪽 귀는 메아리와 공명(共鳴) 현상이 심해 진폭을 가늠할 수가 없다. 이슬에 젖어드는 바짓가랑이에서 시원한 기운이 올라온다. 간밤에 내린 ..

나의 이야기 2023.08.13

느림의 미학 760 시한부 삶

2023. 7. 30. 19;00 십수 년 전에 술을 좋아하던 조카사위가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중환자실로 들어가기 전 눈물을 흘리며 "지금 들어가면 아마도 살아서 못 나올 것 같다."라는 말이 유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장례식장에서 들으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최근 복막염에 이어 패혈증(敗血症)으로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 친구가 조금씩 회복기미를 보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어온다. 전립선암, 담도암, 방광암, 후두암 등과 투병하는 여러 친구들의 소식은 수시로 들어오고 소통을 하는데, 루게릭병으로 고생하는 친구 소식이 한동안 뜸해졌다.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 금세 망각을 한다. 시한부 삶이라, 어차피 사람의 생명은 무한(無限) 하지 않고 유한(有限)하다. 단지 생명의 마감기한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무한한 줄..

나의 이야기 2023.07.30

느림의 미학 759 국지불국(國之不國)2

2023. 7. 22. 19;00 국지불국(國之不國)이라, 즉 "나라는 나라이나 나라가 아니다."라는 말은 나라가 부패하고 관리들이 가렴주구(苛斂註求)를 일삼던 고려말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말이다. 나는 2019년 8월 8일 당시 돌아가는 나라꼴이 한심해 느림의 미학 474호의 제목을 '국지불국'이라 썼다. 그 후 4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진정한 나라다운 나라가 되었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고와 사건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 묻고 또 묻지만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장맛비가 내려도 참 많이 내렸다. 어쩌면 하늘에서 물을 쏟아부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며칠 전 청주 오송 궁평 2 지하차도 침수로 14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했다. 또한 경북 예천에서는 실종자를 수색하던 꽃다운 나이의 젊은 해..

나의 이야기 2023.07.22

느림의 미학 758 싸움 말리기 <선거공약 제 1호 >

2023. 7. 20. 작년에 이어 이번 가을학기에도 학생회장으로 피선(被選)된 손주와 이야기를 나눈다. 며칠 전 선거에 대비한 연설 연습을 한다고 전화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는데 5명이 출마했고, 3명이 결선투표에 진출해 21/26표를 얻어 8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이 되었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회장 되는 걸 원하기에 경쟁이 치열한데 이유는 간단하다. 초등학교는 유치원과 달리 이미 경쟁사회이다. 회장을 하면 자연스럽게 리더십(leadership)을 발휘하게 되고, 나름대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 의(義)롭게 살 수 있다는 거다. 호연지기(浩然之氣)란 '맹자'의 상편에 나오는 말로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의 마음에 차있는 너르고 크고 올바른 기운"이다. 물론 호연지기는 산수(山水)가 뛰어난 ..

나의 이야기 2023.07.20

느림의 미학 757 위암(胃癌) 선고 후 7개월

2023. 7. 16. 05;00 며칠간 지독하게 많은 장맛비가 쏟아졌고 비의 급수도 올라갔다. 폭우라는 표현도 부족해 '극한폭우'라는 이름으로 상향되었다. 400mm가 넘는 비로 전국 곳곳이 비에 잠기고 산사태와 제방 붕괴 등으로 재산손실은 물론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어느 신문기사에서는 백 년도 아니고 천 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비라는 표현을 썼다. 산사태 경고가 발령되었다는데 숲길을 올라야 하나. 아직 어둠 속에 잠긴 황산숲길은 음산한 기운마저 풍긴다. 산사태가 우려되는 산길을 피해 포장된 길로 올랐다가 물 빠진 망월천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소강상태였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해 우산을 편다. 100m 전방엔 비가 오지 않았다. '소잔등비'인가? "여름비는 소 잔등을 가른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나의 이야기 2023.07.16

느림의 미학 756 졸필(拙筆)

2023. 7. 8. 05;00 산길에서 '금마타리'를 만났다. 이 시간 어제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또 만났다. 비소식이 있었고 하늘엔 두툼한 먹구름이 오간다. 일기예보가 잘 맞지 않아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산책이 끝날 때까지 무사하려나. 발걸음이 빨라진다. 골전도 이어폰에서는 스트레스, 우울증 등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시키는 음악이 나오며 치유를 하라고 한다. 한 시간 정도 계곡 물소리가 함께 나오는 음악을 들었더니 배터리가 20% 정도 소모 되었다. 매일 산길에서 마주쳐 얼굴이 익숙한 아주머니가 꽃을 가리키며 꽃이름을 묻는다. '으아리'와 '큰꽃의아리'를 구분하여 설명을 하고, 내친김에 옆에 있는 '칼퀴나물꽃'과 '고삼나무꽃'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내가 카메라로 야생화와 나무를 촬영하는 걸 눈..

나의 이야기 2023.07.08

느림의 미학 755 인왕산의 초콜릿 두 알

2023. 7. 1. 10;30 파란 하늘에서 무더위라는 불꽃을 땅으로 내려보냈나 보다. 염천(炎天)이 따로 없으니 말이다. 아직 11시가 되지 않았는데도 기온이 34도로 급상승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고, 습도 71%는 카메라 렌즈마저 삼켜 버렸다. 11;00 휴! 덥다. 더위와 다한증(多汗症)으로 온몸은 이미 다 젖었고, 유난히 더위에 약한 체질이라 인왕산 트래킹 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친구가 초콜릿 두 알을 준다. 덥고 힘들 땐 당분섭취가 피로해소에 도움이 된다. 내가 평소 메고 다니는 크로스백이나 등산조끼엔 비상용으로 사탕이나 초콜릿 세알 정도가 들어있다.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저혈당으로 탈진한 사람이나 쓰러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늘 휴대를 하는 거다. 실제로 3년 전 코로..

여행 이야기 2023.07.02

느림의 미학 754 "너는 행복하니?"

2023. 6. 22. 09;00 알바 근무시간은 09시부터 12시까지인데, 평생습관을 버리지 못해 늘 1시간 일찍 출근한다. 8시 40분이 되자 여인들이 사무실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결혼 이주여성들을 돕는 '글로벌 다문화센터'라 남자는 없고, 출입하는 사람들은 베트남,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 대부분 동남아 출신 여성들이다. 이주여성들은 주로 오후나 밤 시간에 나오는데, 오늘따라 많은 여성들이 일찍 나왔고 내가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 사무실에서 조기퇴근하지만 이른 시간이라 막상 갈 데가 없다. 당구장은 11시에 문을 열어 2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집에 다시 들어가기도 마뜩잖아 전철 풍산역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의 그늘진 의자에 앉아 골전도 이어폰을 꺼낸다. 그동안 클래식 중 교..

나의 이야기 2023.06.25